오후 늦게서야 잠을 깬다. 14시간을 잤다. 동생은 내가 죽은 줄 알았다고 하였다.
전혀 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의식이 돌아와서 창문으로 하얗게 부서지듯 갓 뜬 태양빛과 훈훈하게 덥혀진 이불 속 기운을 느끼면, 실눈을 떴다가 다시 감는거다. 모르겠다. 뭔가 거부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어릴 적에 맞대고 싶지 않는 문제가 생길때 항상 잠을 자곤 하던것처럼.
오늘 공허한 느낌에 생각했다. 학교수업과 같은 의무가 내게 없을 때 매일 아침 나를 눈뜨게 만들 수 밖에 없는 삶의 '희망'은 무엇이 있을까. 의무가 아닌 의지, 순수한 목적, 희망. (만일 그 의미가 퇴색하지 않았다면, 그래,)희망.
내가 사랑을 하고 있다면 아침 일찍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럴 것 같진 않다. 나는 근본적으로 나만 좋아하는 아이이므로. 결국에는 '게으름'이라는 문제로 귀결되는구나.
어제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또 '삶의 희망, 의지, 목적'이라는 테마에 다다르게 되면서 결국은 '넌,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없어서 죽음을 택했니.'라고 묻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울었는데 그러는 내가 얼마나 위선스럽고 가증스럽던지.
내가 수없이 많은 좋은 사람들을 떠나면서, 혹은 떠나 보내면서 냉정하게 보일 정도로 무덤덤했던 이유는 지금와서 새각해보건데, 나는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느껴진다. 가끔 얼굴을 맞대고, 소소한 일상사를 나누고, 식사를 같이 하고 거리를 걷는 것 같은 일 따위가 모두 괜찮은 일이긴 하지만, 내게 더 큰 의미가 있는 건 '당신이 어딘가에서 숨쉬고 있다'는 신념같은 것이다. 그걸 생각할 때마다 큰 위안이 된다.
마치 그 안에 있는 우물때문에 사막이 아름다운 것처럼. 그곳에 놔두고 온 장미 하나 때문에 모든 별이 아름다워보이는 것처럼. 내가 알던 멋진 사람들. 한때 소중한 기억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이 세상 어디에 살아있기 때문에, ( 세상 사람들 중 적어도 몇 명은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곳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살아가기가 좀 더 수월하게 느껴졌었던 것 같다. 비록 우리 모두가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진 않을지라도, 그런 식의 연대감이 내 정신적 지주였던 듯 하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언젠가 우연히 세상 어느 곳, 어떤 길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걸 명백하게 깨닫게 된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아이의 소식을 접했을 때였다.
'죽음'이라고 단언하기가 어색한 것은 내가 아직 그걸 믿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받아들이지 않고 있긴 하지만, 그 소식을 접한 순간에 '네가 어딘가 살아있을 거야'하는 무언의 신념은 크게 소리를 내면서 깨지는 것을 느꼈고, 그때 느꼈던 충격, 상실감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무거운 것이었다. 순간순간 이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지금도 가슴 한구석이 감전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손 한번 내밀지 않았으면서, 먼저 웃어준 적도, 먼저 같이 거리를 걷자고 어색한 전화를 걸지도, 수다스런 인사를 하지도 않았으면서,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으면서 은연중에 '왜 그 신념을 먼저 깨버리느냐'고 그 앨 탓하고 있었다. 우리가 공유했던 시간만큼 가치가 있는 '무언의 약속' 말이다. 그걸 왜 지키지 않느냐고. 그건 '어딘가에 살아있어 줄 것'이었다.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이기적인 것인지. '먼저 다가서지 않았던 것'에 대한 오랜 죄책감을 그런 식으로 변명하고 있는거다.
우리가 다녔던 고등학교 뒷문에서 시작하여 괴정 지하철역까지. 수없이 많이, 마치 끝이 없을 것만 같이 되풀이되던 귀가길이 떠오른다. 고요한 산자락을 깨치면서 끝나던 야자시간과 북두칠성을 헤아리던 나즈막한 언덕, 그 무거운 밤공기와 조명속의 괴정 지하철역. 네가 버스에 오르던 주택은행 앞. 몇시간이고 찻길 옆 새집의 새를 구경하던 토요일 오후 같은 것들. 네가 나에게 물었던 장기기증 이야기. '우리가 친구일까?'와 같은 질문들. 그리고 내가 너에게 해주었던 '빛보다 빠르다면 과거로 갈 수 있대'하는 이야기들.
그 길위에서 마주했던 어린 날의 우리 생각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너와 나는 정말로 다른 아이였어. 정말로 극과 극이었지. 나는 우리가 서로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나는 왜, 나를 좋아하듯이 너 자신을 더 좋아하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을까. 니가 니 욕심만큼 충분히 예쁘지 않아도 말이야.(언젠가 알게 될 거라고,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겠지.)
철이 들고 부터 학생이라는 신분과 미성숙이라는 굴레는 내게 언제나 벗어나고 싶은 극복해야 할 어떤 것이었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의 모범적 학교생활은 아이러니하게도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요건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른이 되지 않고 영원히 학생이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발랄한 또래들이 내 눈에는 신기하게만 보였다.
지금껏 나는 고등학생 시절을 회상하기를 회피해 왔는데, 그 아이로 인해 떠오르는 건 그저 치기어린 작은 나와 순수한 생각들, 관심사들, 그리고 아름답기만 한 추억들이니 우스운 일이다. 나는 아무것도 준것 없이 옛날처럼 여전히 받기만 하고 있구나. 미안해. 정말 미안해.
전혀 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의식이 돌아와서 창문으로 하얗게 부서지듯 갓 뜬 태양빛과 훈훈하게 덥혀진 이불 속 기운을 느끼면, 실눈을 떴다가 다시 감는거다. 모르겠다. 뭔가 거부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어릴 적에 맞대고 싶지 않는 문제가 생길때 항상 잠을 자곤 하던것처럼.
오늘 공허한 느낌에 생각했다. 학교수업과 같은 의무가 내게 없을 때 매일 아침 나를 눈뜨게 만들 수 밖에 없는 삶의 '희망'은 무엇이 있을까. 의무가 아닌 의지, 순수한 목적, 희망. (만일 그 의미가 퇴색하지 않았다면, 그래,)희망.
내가 사랑을 하고 있다면 아침 일찍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럴 것 같진 않다. 나는 근본적으로 나만 좋아하는 아이이므로. 결국에는 '게으름'이라는 문제로 귀결되는구나.
어제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또 '삶의 희망, 의지, 목적'이라는 테마에 다다르게 되면서 결국은 '넌,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없어서 죽음을 택했니.'라고 묻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울었는데 그러는 내가 얼마나 위선스럽고 가증스럽던지.
내가 수없이 많은 좋은 사람들을 떠나면서, 혹은 떠나 보내면서 냉정하게 보일 정도로 무덤덤했던 이유는 지금와서 새각해보건데, 나는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느껴진다. 가끔 얼굴을 맞대고, 소소한 일상사를 나누고, 식사를 같이 하고 거리를 걷는 것 같은 일 따위가 모두 괜찮은 일이긴 하지만, 내게 더 큰 의미가 있는 건 '당신이 어딘가에서 숨쉬고 있다'는 신념같은 것이다. 그걸 생각할 때마다 큰 위안이 된다.
마치 그 안에 있는 우물때문에 사막이 아름다운 것처럼. 그곳에 놔두고 온 장미 하나 때문에 모든 별이 아름다워보이는 것처럼. 내가 알던 멋진 사람들. 한때 소중한 기억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이 세상 어디에 살아있기 때문에, ( 세상 사람들 중 적어도 몇 명은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곳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살아가기가 좀 더 수월하게 느껴졌었던 것 같다. 비록 우리 모두가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진 않을지라도, 그런 식의 연대감이 내 정신적 지주였던 듯 하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언젠가 우연히 세상 어느 곳, 어떤 길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걸 명백하게 깨닫게 된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아이의 소식을 접했을 때였다.
'죽음'이라고 단언하기가 어색한 것은 내가 아직 그걸 믿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받아들이지 않고 있긴 하지만, 그 소식을 접한 순간에 '네가 어딘가 살아있을 거야'하는 무언의 신념은 크게 소리를 내면서 깨지는 것을 느꼈고, 그때 느꼈던 충격, 상실감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무거운 것이었다. 순간순간 이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지금도 가슴 한구석이 감전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손 한번 내밀지 않았으면서, 먼저 웃어준 적도, 먼저 같이 거리를 걷자고 어색한 전화를 걸지도, 수다스런 인사를 하지도 않았으면서,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으면서 은연중에 '왜 그 신념을 먼저 깨버리느냐'고 그 앨 탓하고 있었다. 우리가 공유했던 시간만큼 가치가 있는 '무언의 약속' 말이다. 그걸 왜 지키지 않느냐고. 그건 '어딘가에 살아있어 줄 것'이었다.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이기적인 것인지. '먼저 다가서지 않았던 것'에 대한 오랜 죄책감을 그런 식으로 변명하고 있는거다.
우리가 다녔던 고등학교 뒷문에서 시작하여 괴정 지하철역까지. 수없이 많이, 마치 끝이 없을 것만 같이 되풀이되던 귀가길이 떠오른다. 고요한 산자락을 깨치면서 끝나던 야자시간과 북두칠성을 헤아리던 나즈막한 언덕, 그 무거운 밤공기와 조명속의 괴정 지하철역. 네가 버스에 오르던 주택은행 앞. 몇시간이고 찻길 옆 새집의 새를 구경하던 토요일 오후 같은 것들. 네가 나에게 물었던 장기기증 이야기. '우리가 친구일까?'와 같은 질문들. 그리고 내가 너에게 해주었던 '빛보다 빠르다면 과거로 갈 수 있대'하는 이야기들.
그 길위에서 마주했던 어린 날의 우리 생각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너와 나는 정말로 다른 아이였어. 정말로 극과 극이었지. 나는 우리가 서로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나는 왜, 나를 좋아하듯이 너 자신을 더 좋아하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을까. 니가 니 욕심만큼 충분히 예쁘지 않아도 말이야.(언젠가 알게 될 거라고,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겠지.)
철이 들고 부터 학생이라는 신분과 미성숙이라는 굴레는 내게 언제나 벗어나고 싶은 극복해야 할 어떤 것이었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의 모범적 학교생활은 아이러니하게도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요건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른이 되지 않고 영원히 학생이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발랄한 또래들이 내 눈에는 신기하게만 보였다.
지금껏 나는 고등학생 시절을 회상하기를 회피해 왔는데, 그 아이로 인해 떠오르는 건 그저 치기어린 작은 나와 순수한 생각들, 관심사들, 그리고 아름답기만 한 추억들이니 우스운 일이다. 나는 아무것도 준것 없이 옛날처럼 여전히 받기만 하고 있구나. 미안해. 정말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