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자...

뒤늦은 기억 들추기


아... 금자씨 너무 재미있었다.
너무 몰입해서 봤던 나머지 엔딩음악 시작할 때 나도 모르게 박수를 짝짝 쳤다가
아무도 안 치는 걸 깨닫고 바로 멈췄다.
복수가 어떻고, 이영애 연기가 어떻고 줄거리가 어떻고.. 주저리 주저리 다 집어치우고 나더라도,
한계가 없는 이 영화의 '독특함' 그것 자체로 얘기 끝이다.
늦은 여름밤비로 한강은 평소보다 더 희번득거리고 있었는데
극장을 나오면서 내려다 보이는 그 풍경이 더욱 더 현실감 없이 만들고 있는 거 같았다. 한 10분 정도를 영화속을 걷는 듯한 느낌으로 복도를 걸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돈을 내고 영화를 보러 왔었지'하는 느낌, 현실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모국어로 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아마도 이 영화가 영어 혹은 다른 나라의 언어로 만들어진 영화였더라면 이 정도로 몰입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번득 들었다. 그리고 혹 여성화자가 아니였더라면 하는 생각도.

- 개연성에 대해...
순전히 개인적인 감성, 개인적인 경험, 개인적인 느낌에 근거하여 감상 했던 터라,
남들에게도 이 영화가 나에게만큼 깊은 의미로 다가왔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해보지 않은 사람들(혹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질 만큼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금자의 복수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만큼 미워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복수뒤에 오는 짙은 허무감( 이건 곧 이 영화 후반부의 허무감)을 가슴으로 공감할 수 있을까.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건방지게도) 이해했다고 말할 것이다. 누군가 금자의 복수에는 설득력이 없다.고 하는 걸 들었다. 영화속에서 금자가 그만큼 복수에 집착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옳은 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설득력 없는 그 빈 공간을 내 개인적 경험으로 채워나가면서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그만큼 몰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영화는 금자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였고 금자씨의 복수가 아니라 나의 복수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 허무는 굳이 그렇게 일을 벌이지 않더라도 현실 속에서 충분히 예감할 수 있었던 그 허무이기 때문에. 결국 나도 당신도 피해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 특이함에 대해...
나는 올드보이를 보지 않았다. 복수는 나의 것도. 내가 다른 이 감독 영화를 본적이 있었던가...??? 그런 것 같지 않다. 암튼 올드보이는 촬영장면을 잠시 구경도 했었고 너무나 많은 화제를 모았어서 당연히 봤을 듯도 한데 오히려 그런 이유땜에 보기도 전에 질려버려서 안 본 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내게 금자씨의 독특함은 거의 충격적이었다. 거의 모든 영화는 헐리우드 출생만 아니면 독특하게 느껴진다. 그건 내가 미국식 영화에 얼마나 길들여져 있느냐를 반증하는 거다. 그게 뭐 열등하거나 별볼일 없는 영화들이어서 그런게 절대 아니고, 다들 알다시피 구조화, 정형화 된 내러티브, 또 그것의 재탕에 재탕.. 잘 알지 않는가. 이미 형식화된 미덕에서 벗어나기란 얼마나 힘든지.. 독특하고자 한다면 이 정형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되는 셈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금자씨는 이때까지 본 것 중 달라도 정말 다르다. 미국영화 같지도 않고 프랑스 영화 같지도, 한국 영화같지도.. 일본, 이란, 뭐 그 어느 누구 영화같지도 않다. 이건 박찬욱 영화다. 이건 아마도 감독에겐 커다란 찬사가 될 것이다. 이런 영화를 보면 나같은 평범한 애들이 젊은 혈기로 '나도 영화 만들래'하며 설쳐대지 않았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창의성, 재능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재미있다는 거다. 독특하면서 지루한 영화는 많이 있었다. 지루한 것이 작가주의인 것 마냥. 근데 이 영환 재미있잖아. 예상이 깨트려지는 재미(반전 같은 거 말고, 같은 이야기를 해도 이때까지 봐왔던 흐름이 아닌 다른 흐름으로 얘기하는), 피 튀길까봐 비옷 입는등의 블랙유머, 빠른 진행, 충분하면서 쉬운 설명같은 거 말이다.
암튼 최고구나. 대중영화의 기록적인 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