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되면 이 주제에 관하여 쓸 때가 된 거 같지 않은가.
더이상 시니컬했던 중학생도 우울하고 감상적이었던 고등학생도,
패기있던 대학생도 아닌 이때가 되었으니.
사회인, 더 사실대로 말하면 "생.활.인"이 되었으니 말이다.
언급했던 약 10년동안 나는 몽상가였고, 열정적이었고, 사회 전도적이었다.
단 한번도 나는 결혼해야지, 어떠어떠한 사람과, 어떠어떠한 장소에서 누구누구와 등등 어쩌구 저쩌구 등등등,
내 결혼에 대해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철들면서부터 독신주의자였다.
중학교 2학년 바가지 단말머리를 하고 있는 꾀죄죄한 소녀였던 시절부터 그랬었다.
아, 수정해야겠다. 한때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이 사람과 헤어지면 평생을 불행하게 살 것만 같은 사람,
결정적으로 70년을 함께 살아도 전혀 지겨워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생긴다면 결혼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절대로 그런 사람은 생길 것 같지가 않다. 그건 자연의 섭리에도 어긋나는 일이 아닐까.
(이기적 유전자라는 논리에 따르자면, 자연의 섭리안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더 나는 배우자, 더 나은 2세를 낳을 수 있는 기회를 찾아다니는 동물적 존재가 아닌가.
어떻게 피를 나누지 않은 사람과의 70년이 지긋지긋해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것도 형제보다 더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70년을.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진심으로.
좀 덜 친밀한 관계면 가능할 것 같다.
많은 일을 함께하기는 하지만, 상대의 privacy를 존중해주며, 가끔은 상대의 비밀을 인정하고 캐묻지 않는 그런 관계.
어떤 삶은 공유하고, 어떤 삶은 공유하지 않는 그런 관계. 서로를 신뢰하되, only me!라는 논리를 내세우지 않는 관계.
당당히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갈거야, 들어오지마라고 요구할 수 있는 그런관계말이다.
우리네 일반적인 사람들은 나이가 차면 결혼을 고려하기 시작하고,
이리 저리 선을 보러 다니고, 만난지 몇개월 만에 60년 70년을 함께할 사람을 정한다.
그것은 그 몇개월동안 앞으로의 70년의 인생을 결정해버리는 것과 같다.
정말로 얼마나 경솔한 일인지...
내가 보기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보다,
서른, 마흔을 넘기고서도 결혼하지 않고, 혹은 결혼하지 못하고, 오늘은 이 사람을 사랑하고,
또 내일은 저 사람을 사랑하는 그런 중년들, 혹은 노인들의 인생이 훨씬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영원히 사랑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리고 영원히 당신을 책임지지 못할 것을 알기에,
서로를 묶지 않을 수 있는 거 아닌가.
"결혼하지 않는다" 라는 말보다 "결혼하지 못했다"라는 말이 더 불쌍하고, 안타깝게 들릴지 몰라도,
그 말이 정답이다. 어떻게 그렇게들 쉽게 결혼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결혼은 쉽지 않은 것이고, 결혼이라는 궁극의 결론에 많은 사람들이 "안"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못"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게 쉽게 결혼하는 사람들은 이혼도 딱 그만큼 쉬운법이다.
나는 절대로 이혼이 쉽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고 더 많은 것을 책임질 만한 위치까지 간 사람들은
절대로 그렇게 쉽게 처음 정했던 걸 무너뜨려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지금 생각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에 의해서 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을 상처범벅으로 보내게 될 유년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혼 자체가 그렇게 심각하고 무겁고 끔찍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근데도 불구하고 이혼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무섭고, 호러블한 일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딱 그것이 나이어린 친구들이 부모들이 이혼할 때 겪는 감정들이기 때문이다. 어린 영혼들은 이상하게도 그런 일들에 상처를 받는다. 세계를 지탱하고 있던 큰 기둥이라고 할까, 은신처라고 할까, 보호막이라고 할까, 그것이 그냥 쫙 찢겨져 버리거나, 산산조각나는 그런 느낌을 받는 거다. 그들이 그만큼 상처를 받지 않는다면야 나는 이혼을 반대할 어떤 이유도 없다고까지 생각한다.)
아이들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그렇게 결혼에 대해 심각해져야 할 필요는 없다.
한때 죽도록 사랑했기때문에 밤낮 같이 있고 싶어졌기 때문에 결혼을 결심하고,
그리고 몇년 후 그 감정들이 눈녹아 사라지듯 다 흔적도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이혼을 결심해도 도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쉽게 결혼하는 문제는 어딘가 찜찜하다.
그 사람을 영원히 사랑할 자신이 없다면, 내가 내 결심에 관한 믿음이 도저히 생기지 않는다면,
그럼에도 "지금은" 그 사람이 마냥 좋다면 그냥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살면 되는 것 아닌겠는가.
결혼이란 "영원"이라고 불리는, 신성함 그 자체인 개념에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나에게, 그대에게, 세상에게. 영원히 사랑하겠노라고 맹세하는 것이다.
그 맹세를 쉽게 하고 쉽게 깨는 것은,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그대에 대한 예의도 아니며, 세상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결코 쉬운 개념일 수가 없는 것이다.
암튼 이 얘긴 이정도로 하고.
결혼의 형식에 대한 생각도 나름대로 있다.
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에서 유일하게 동감했던 에피소드 하나는 미란다의 결혼식이었다.
자세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이 사람 저사람 모아놓고, 바보같은 서약이나 읊고 있는 남들이 다하는 결혼식이 무의미하고
바보같아 보인다는 이유로 미란다는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냥 시청에서 문서작성하고 시청직원의 몇마디 말로 끝내려하다가,
나중에 마음을 바꿔 친한 친구와 가족 몇만 시청 잔디밭 앞에 둥그렇게 세워놓고는,
맹세를 하는 간단한 절차만 거친다. 그리고 가까운 식당에서 함께 식사.
왜 맘을 바꿨냐는 친구의 물음에, "사람들 앞에서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크게 말하고 싶었어"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일이 중요하긴 하다.
그래서 요란한 복장과 의식복을 갖춰 입고, 평소엔 하지 않는 화장을 하고, 어색한 미소를 짓고..
등골이 휠만큼의 격식에 맞는 선물을 준비하고, 그러느라 기가 찰 정도의 돈을 쓰고,
그 돈을 메우기 위해(아니, 경조사에 주위사람들과 서로 돕자는 상부상조의 정신으로겠지)
나의 결혼식을 축하해주러 오는 사람들로부터 돈봉투를 받아 챙기고...
이런 일들이 정말로 비합리적이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건 나 혼자만 그런 것인지..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런 우스꽝스러운 격식을 갖출 정도로 중요한 것인가.
사실 나는 사람들의 축하는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내가 워낙에 천상천하유아독존 스타일이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냥 가족과 가까운 친구 몇 앞에서 "가 영원히 사랑할 사람이 이사람이야"고 한마디만 해줄 수 있으면 그냥 그 정도가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게 훨씬 행복한 일이 될 거 같다.
+++ 음악에 관한 영화는 항상 보고 나면 뭔가 풍부해지는 느낌이다. 카핑 베토벤을 봤다.
회사에 가는 것은 나를 소모시키고 닳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음악에 관한 영화를 본 후에는 내 안에 뭔가가 차오느는 것 같다. 열대섬에서 바다를 마주하고 누워있는 것도, 낯선 거리를 걸으며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며 여행하는 것도, 이렇게 앉아서 몇마디 글을 쓰는 것도 나를 차오르게 하는 것 같다. 나는 나를 채우는 것들을 더 찾아야 된다. 그리고 평생동안 채우는 일만 하고도 살 수 있을만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 가끔은 초에 불을 붙이고, 마차를 타고, 펜촉에 잉크를 묻혀가며 메모를 하며 사는 삶을 상상해본다.
음악을 듣기 위해 MP3를 꺼내거나 컴퓨터를 켜서 웹페이지를 들락거리는 대신에,
날짜를 꼽아 좋아하는 작곡가의 리사이틀에 가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떡진 머리를 감추려 야구모자를 눌러쓰며 요 앞 슈퍼에 가는 대신
1-2시간을 걸어서 먹을거리를 사러 장에 가는 삶.
어느 나라이든지 가난과 불편함 고단함같은 것들이 인생을 짓누를 수도 있을 텐데.
평생은 말고 가끔은 완전히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