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무력감

어제의 정답이 오늘은 악이 된다. 시장은 변하고, 기업의 방향도 그에 맞춰 변해야 하겠지만.
어제 우리의 철학과 가치관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권(?)이 바뀌면서 서서히 바래져가고,
심지어 암암리에 타파해야 할 습관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변해버린다면 (혹은 변해야만 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이 과연 "철학과 가치관"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일까.
그럴수 없다면 -기업시장에서 철학이 갖는 의미가 전혀 없다면-, 나는, 우리 모두는 왜 여기 있는 것일까.
(그냥 돈, 인것인가)

내 사회생활 몇 년동안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사이에 나는 끊임없이 교육되고 있었던 것임을 이제서야 느낀다.
그 내용은 바로, '모든 업무에 효율성을 기해라. 쓸데 없는 절차를 없애라. 최우선 가치는 고객이다.' 라는 것.
'기존 방식을 의심하라'라는 것도 역시. 그동안 끔찍히도 싫어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모든 비난과 모든 관습에 말 그대로 오픈되어 있는 문화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내가 그나마 관련부서의 비효율성을 비난하고, 현장의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마침내 나 스스로의 비효율성을 비난할 수 없었더라면, 아주 일찍서부터 좌절하여 떨어져 나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직의 구조가 바뀌면서 은근 슬쩍 자리잡고 있는 것은, 한번 결정된 것, 혹은 윗 선에서 지시한 것은 그에 대한 의견도, 검토도, 협의도, 비난도 없이 무조건 수행한다는 것이다.
의사결정 부서는 수행 결과에 대한 성과를 무조건적으로 취합하여 통보하고, 수행부서는 그것이 오류가 많음을 알고 있음에도 먼저 나서서 지적하지 않는다.
현장의 어려움을 공유하여 개선하려고 하지도,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지도 않는다.
그냥 각자가 열심히!만 하면 해결된다고 믿는 것일까.
효율화를 위한 그 끊임없는 열정이 인정받던 시절은 지났다.
과연 우리는 올바른 방법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발전하고 있는 것일까.

처음으로 관료적 조직에 무력감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 같다.

이것은 배부른 소리일까. 하지만 마침내는 적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 조직의 일부가 될 것이다. 이 틀 안에서 생각하게 되고, 이 틀 안에서 해결법을 찾으려 하게 될 것이다. 수많은 관료중의 한 명의 될 것이다.

그래서 더욱 더 내가 왜 여기 있는 것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 있어도 괜찮을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