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거미여인의 키스
일상 혹은 놀이 2005. 1. 2. 17:32
- "남미계열의 소설에서 특이하게 드러나는 마법적 리얼리즘(Magic Realism)"이 이런거구나. 그렇다면 남미 소설들을 더 읽어봐야할 가치가 있다. 동성애 문제니, 혁명 문제니, 착취문제니 다 떠나서, 소설 자체로 얼마나 아름답고 낭만적인지.
(보르헤스, 마르케스등)
- 영화,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니 금시초문인걸. 뮤지컬은 아마도 기회가 없겠지만 영화는 꼭 보고 싶다.
- 두 인물의 대조.
몰리나 : 감각주의자, 감성적, 낭만주의자, 로맨티스트, 쇼윈도 디스플레이어, 동성애자
발렌틴 : 이상주의자, 논리적, 이성주의자, 반 체제 혁명가, 이성애자
내가 조금만 더 어릴 때 이 소설을 읽었다면 발렌틴의 입장에서 더 많이 공감했을 거 같다. 하나 이루어 낸 거 없이 자라버렸지만 어쨌든 나도 열혈 혁명주의자였다.(정치적으로 말고, 성향이 말이다) 게다가 모든 현상마다 원인과 결과를 알고싶어했고, 감성에 기초하여 생성된 산물들을 약간 비하하기도 했었던 거 같다.
아, 하지만 나는 공학도로 자라버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러니 당연하게도, 몰리나 못지않은 낭만주의자가 되었다. 그가 얘기하는 그 아름다운 여성향 영화들이란.. 혹은 그가 묘사하는 그 아름다운 언어에 매혹되었든지. 사실은 작가의 어조이겠지만말이야. 섬세하지 않은 듯 하면서 예리하게 섬세한 작가의 어조는 역시 그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건가. 훗, 이것 역시 나의 편견에 불과할 것이다.
- '주'의 형식으로 자주자주 길게 달리던 부가설명을 나는 거의 읽지 않았다. 대충 훑은 바에 의하면 동성애에 관련하여 원인과 결과를 찾기위한 학문적 접근,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기초한 프로이드식 해석들. 역시나 내가 좀 더 어렸다면, 정말로 흥미진진하게 꼼꼼히 파헤치며 읽었을 내용들이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이 그저 교묘하고 논리정연하게 끼워맞춘 비약의 집합인 것만 같다.
그 '주'들에 따르면 몰리나의 동성애적 성향은 그의 어머니에 대한 깊은 애정때문에 결국은 자신을 어머니와 동일시하게 되어 발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 곳곳에서 드러나는 그의 애정은 정말로 정말로 가슴 찡했고, 나는 진짜로 많이 공감하였다. 그 소설적 장치가 단지 몰리나의 동성애적 성향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친다면 좀 허무하잖아. 좀 우습기도 해.
-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건 '착취와 굴복'의 모티브이다. 이 주제가 정말 마음에 든다. 남편과 부인의 관계, 남자친구와 여자친구의 관계, 심지어 동성애자들간의 애인관계까지 그 모든 것이 착취와 굴복의 관계라고 간단하게 한문장으로 누군가 말했다면, 나는 또 급진적 페미니즘같은 진부한 소리라고 생각해버렸을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이문제에 관해서 발렌틴이 몰리나에게 자신을 혹사시키지 말 것을 부탁할 때, 몰리나가 했던 말은 정말로 일리가 있다.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이 아니고, 그의 심리상태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여성의 심리상태를 대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강한 남성과 여린 여성의 신화는 나 자신도 좋아하는 이야기지만(나도 교육받았다구) 그 둘이 합쳐질 때는 동등한 위치에서여야만 한다. 아, 너무도 힘들겠지만.
이런 심리상태를 가진 등장인물을 여성이 아닌 동성애 성향을 가진 남성으로 설정한 작가의 선택은 얼마나 멋진 것인지!
- 몰리나가 표범여인 이야기를 할 때 그가 그 표범여인과 자신을 동일시했고, 발렌틴은 매력적인 정신과의사를 자신과 동일시했었다.
나는 둘 중 누구를 동일시하면서 이 소설을 읽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멋지게 만드는 것 중 한가지는 둘의 캐릭터가 정말정말 매력적이라는 거다. 후반부의 경찰보고서를 읽으면서 알게되는 몰리나의 일상들은 나에겐 정말 인상적이었다. 북서쪽(발렌틴이 있는 감옥)을 자주자주 쳐다보던 그, 엄마와 이모와 친구들을 만나는 그, 가브리엘에게 전화를 할 때의 그. 몰리나가 죽는 것은 명백하게 예견된 사실이었는데 그럼에도 그가 총에 맞을 때 정말 철렁했다. 마음이 어찌나 아프던지 말이다.
그리고 그 성격더러운 발렌틴.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주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던 그. 그리고 그건 결국엔 받은 만큼 줘야한다는 의무감때문이지. 얼마나 타당한 말인지 모른다. 마치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런 그도 몰리나의 슬픔을 덜어주고 싶어 섹스를 하고 몰리나에게 '다른 사람들이 널 괴롭히게 놔두지 마라'고 부탁하였다.
- 몰리나의 사랑은 엄마에게 향한 것이든, 그의 자랑스런 웨이터 가브리엘에게 향한 것이든, 발렌틴에게로 향한 것이든 그저 서정적이고 아름답기 짝이 없다. 어째서 동성애자들이 비정상적 호모일 뿐일까. 그들은 그저 사랑하고 그렇기 때문에 만지고 싶을 뿐인데. 몰리나가 발렌틴의 눈썹위 점을 만지듯이.
<발췌>
거미여인의 키스
마누엘 피그(Manuel Puig)
현대미학사 유은경 옮김
- 비에 젖은 깨끗한 유리창 위로, 흐릿한 얼굴을 기억 속에서 봐, 엄마의 얼굴과 그의 얼굴, 그는 틀림없이 기억할 거야, 그가 와주었음 좋겠어. 정말로 그가 왔음 좋겠어, 첫번째 일요일에, 생활의 모든 일은 단지 습관 문제야, 그러면 다른 날에도 오고, 그리고 또 다른 날도, 내 가석방이 통과되면 그는 교도소 밖의 모퉁이에서 나를 기다리는 거야, 우리는 택시를 타고, 손을 마주잡고, 수줍고 메마른 첫 키스를 하는거야, 입을 다물고 있으면 건조해, 반쯤 벌리면 조금 촉촉해 질 거야, 그의 타액은 담배 맛일까? 만약 내가 감옥을 나가기 전에 죽는다면 결코 그의 타액 맛을 알 수 없을 거야, ...
p. 124, 몰리나, 가브리엘을 떠올리며
- 이상한 생각하지 마, 하지만 내가 너에게 잘해 준다면...... 그건 내가 너의 우정을 얻고 싶기 때문이야, 그리고, 말하지 못할게 뭐야? ...... 너의 애정을. 우리 엄마에게 잘해주고 싶은 것과 같은 거지, 엄마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좋은 사람이고, 난 그녀를 사랑하니까, 그녀가 좋은 사람이고, 그리고 날 사랑해 주길 바라니까......
중략
그런 사람이니까...... 난 널 존경해, 그리고 널 좋아해, 너도 나에게 같은 것을 느끼길 바래...... 왜냐면, 이것 봐, 우리 엄마가 날 사랑하는 것은, 내 인생에서 일어난 유일한 좋은 일이야, 엄마는 나를 있는 대로 받아주고, 그대로 사랑해 줘, 솔직하고 단순하게. 그건 하늘이 내려준 선물 같은 거야, 나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이지, 유일한.
p. 234, 몰리나 발렌틴에게
나도 그렇다. 몰리나처럼. 나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이야.
- 난 지쳤어, 발렌틴. 상처받는데 지쳤다구. 넌 모를 거야, 난 속으로 아주 많이 아파.
- 어디가 아파?
- 가슴, 그리고 목...... 왜 슬픔은 항상 거기에, 바로 그 한곳에 걸릴까?
p.246, 몰리나와 발렌틴.
슬픔은 정말로 거기에만 걸린다.
- 그리고 또 어떤 것을 느끼는지 알아, 발렌틴? 하지만 잠시만, 더 이상은 안 할게.
- 뭐야? 말해봐, 그런데..... 움직이지 마......
- 잠시동안 내가 여기 없는 것 같았어..... 여기에도 아니면 저기 바깥의 어느 곳에도......
-......
- 내가 아예 여기에 없는 것 같았어..... 마치 너 혼자인 것처럼.
-.....
- 아니면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닌 것처럼. 마치 지금...... 내가 너인 것처럼.
p. 249 몰리나와 발렌틴
- 내 말은 단지 네가 호의나 아니면 변명 같은 것으로 그것을 보상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네가...... 복종할 필요는 없어.
- 하지만 만약 어떤 남자가...... 내 남편이라면, 그는 나에게 명령을 내릴 것이고, 그리고 그게 옳다고 느낄 거야. 그게 자연스러운 거야, 왜냐면 그런 것이 그를..... 집안의 남자 주인으로 만들기 때문이야.
- 아냐, 집안의 남자 주인이나 여자주인이나 서로 동등해야 해.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관계는 착취의 형태가 될 거야.
- 하지만 그렇다면 자극이 없잖아.
- 왜?
- 응, 이건 아주 은밀한 이야기지만, 네가 물어보니까...... 자극은 남자가 널 껴안을 때..... 약간 두렵게 느낄 수 있다는 데 있어.
- 아냐, 그건 모두 틀린 말이야. 도대체 누가 네 머리 속에 그런 생각을 집어넣었어? 그건 완전히 틀린 말이야.
- 하지만 난 그렇게 느끼는 걸.
- 넌 그런 식으로 느끼지 않아, 넌 누구든 네 머리 속에 그런 허튼 생각을 집어넣는 늙은 여편네들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많이 들었어. 여자가 된다는 것이...... 모르겠어...... 순교자가 된다는 것은 아니야.
p. 282
- 한가지 약속할게, 발렌틴...... 널 기억할 때마다, 언제나 행복할거야, 네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처럼.
- 다른 것도 약속해 줘...... 사람들이 널 존중하도록 만들겠다고, 누구도 널 심하게 다루거나 착취하게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누구도 다른 사람들을 착취할 권리는 갖고 있지 않아. 이 말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라면, 용서해 줘, 지난 번에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네가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 ......
- 몰리나, 다른 사람들이 널 괴롭히게 놔두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
- 약속해.
p. 304
(보르헤스, 마르케스등)
- 영화,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니 금시초문인걸. 뮤지컬은 아마도 기회가 없겠지만 영화는 꼭 보고 싶다.
- 두 인물의 대조.
몰리나 : 감각주의자, 감성적, 낭만주의자, 로맨티스트, 쇼윈도 디스플레이어, 동성애자
발렌틴 : 이상주의자, 논리적, 이성주의자, 반 체제 혁명가, 이성애자
내가 조금만 더 어릴 때 이 소설을 읽었다면 발렌틴의 입장에서 더 많이 공감했을 거 같다. 하나 이루어 낸 거 없이 자라버렸지만 어쨌든 나도 열혈 혁명주의자였다.(정치적으로 말고, 성향이 말이다) 게다가 모든 현상마다 원인과 결과를 알고싶어했고, 감성에 기초하여 생성된 산물들을 약간 비하하기도 했었던 거 같다.
아, 하지만 나는 공학도로 자라버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러니 당연하게도, 몰리나 못지않은 낭만주의자가 되었다. 그가 얘기하는 그 아름다운 여성향 영화들이란.. 혹은 그가 묘사하는 그 아름다운 언어에 매혹되었든지. 사실은 작가의 어조이겠지만말이야. 섬세하지 않은 듯 하면서 예리하게 섬세한 작가의 어조는 역시 그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건가. 훗, 이것 역시 나의 편견에 불과할 것이다.
- '주'의 형식으로 자주자주 길게 달리던 부가설명을 나는 거의 읽지 않았다. 대충 훑은 바에 의하면 동성애에 관련하여 원인과 결과를 찾기위한 학문적 접근,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기초한 프로이드식 해석들. 역시나 내가 좀 더 어렸다면, 정말로 흥미진진하게 꼼꼼히 파헤치며 읽었을 내용들이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이 그저 교묘하고 논리정연하게 끼워맞춘 비약의 집합인 것만 같다.
그 '주'들에 따르면 몰리나의 동성애적 성향은 그의 어머니에 대한 깊은 애정때문에 결국은 자신을 어머니와 동일시하게 되어 발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 곳곳에서 드러나는 그의 애정은 정말로 정말로 가슴 찡했고, 나는 진짜로 많이 공감하였다. 그 소설적 장치가 단지 몰리나의 동성애적 성향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친다면 좀 허무하잖아. 좀 우습기도 해.
-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건 '착취와 굴복'의 모티브이다. 이 주제가 정말 마음에 든다. 남편과 부인의 관계, 남자친구와 여자친구의 관계, 심지어 동성애자들간의 애인관계까지 그 모든 것이 착취와 굴복의 관계라고 간단하게 한문장으로 누군가 말했다면, 나는 또 급진적 페미니즘같은 진부한 소리라고 생각해버렸을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이문제에 관해서 발렌틴이 몰리나에게 자신을 혹사시키지 말 것을 부탁할 때, 몰리나가 했던 말은 정말로 일리가 있다.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이 아니고, 그의 심리상태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여성의 심리상태를 대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강한 남성과 여린 여성의 신화는 나 자신도 좋아하는 이야기지만(나도 교육받았다구) 그 둘이 합쳐질 때는 동등한 위치에서여야만 한다. 아, 너무도 힘들겠지만.
이런 심리상태를 가진 등장인물을 여성이 아닌 동성애 성향을 가진 남성으로 설정한 작가의 선택은 얼마나 멋진 것인지!
- 몰리나가 표범여인 이야기를 할 때 그가 그 표범여인과 자신을 동일시했고, 발렌틴은 매력적인 정신과의사를 자신과 동일시했었다.
나는 둘 중 누구를 동일시하면서 이 소설을 읽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멋지게 만드는 것 중 한가지는 둘의 캐릭터가 정말정말 매력적이라는 거다. 후반부의 경찰보고서를 읽으면서 알게되는 몰리나의 일상들은 나에겐 정말 인상적이었다. 북서쪽(발렌틴이 있는 감옥)을 자주자주 쳐다보던 그, 엄마와 이모와 친구들을 만나는 그, 가브리엘에게 전화를 할 때의 그. 몰리나가 죽는 것은 명백하게 예견된 사실이었는데 그럼에도 그가 총에 맞을 때 정말 철렁했다. 마음이 어찌나 아프던지 말이다.
그리고 그 성격더러운 발렌틴.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주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던 그. 그리고 그건 결국엔 받은 만큼 줘야한다는 의무감때문이지. 얼마나 타당한 말인지 모른다. 마치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런 그도 몰리나의 슬픔을 덜어주고 싶어 섹스를 하고 몰리나에게 '다른 사람들이 널 괴롭히게 놔두지 마라'고 부탁하였다.
- 몰리나의 사랑은 엄마에게 향한 것이든, 그의 자랑스런 웨이터 가브리엘에게 향한 것이든, 발렌틴에게로 향한 것이든 그저 서정적이고 아름답기 짝이 없다. 어째서 동성애자들이 비정상적 호모일 뿐일까. 그들은 그저 사랑하고 그렇기 때문에 만지고 싶을 뿐인데. 몰리나가 발렌틴의 눈썹위 점을 만지듯이.
<발췌>
거미여인의 키스
마누엘 피그(Manuel Puig)
현대미학사 유은경 옮김
- 비에 젖은 깨끗한 유리창 위로, 흐릿한 얼굴을 기억 속에서 봐, 엄마의 얼굴과 그의 얼굴, 그는 틀림없이 기억할 거야, 그가 와주었음 좋겠어. 정말로 그가 왔음 좋겠어, 첫번째 일요일에, 생활의 모든 일은 단지 습관 문제야, 그러면 다른 날에도 오고, 그리고 또 다른 날도, 내 가석방이 통과되면 그는 교도소 밖의 모퉁이에서 나를 기다리는 거야, 우리는 택시를 타고, 손을 마주잡고, 수줍고 메마른 첫 키스를 하는거야, 입을 다물고 있으면 건조해, 반쯤 벌리면 조금 촉촉해 질 거야, 그의 타액은 담배 맛일까? 만약 내가 감옥을 나가기 전에 죽는다면 결코 그의 타액 맛을 알 수 없을 거야, ...
p. 124, 몰리나, 가브리엘을 떠올리며
- 이상한 생각하지 마, 하지만 내가 너에게 잘해 준다면...... 그건 내가 너의 우정을 얻고 싶기 때문이야, 그리고, 말하지 못할게 뭐야? ...... 너의 애정을. 우리 엄마에게 잘해주고 싶은 것과 같은 거지, 엄마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좋은 사람이고, 난 그녀를 사랑하니까, 그녀가 좋은 사람이고, 그리고 날 사랑해 주길 바라니까......
중략
그런 사람이니까...... 난 널 존경해, 그리고 널 좋아해, 너도 나에게 같은 것을 느끼길 바래...... 왜냐면, 이것 봐, 우리 엄마가 날 사랑하는 것은, 내 인생에서 일어난 유일한 좋은 일이야, 엄마는 나를 있는 대로 받아주고, 그대로 사랑해 줘, 솔직하고 단순하게. 그건 하늘이 내려준 선물 같은 거야, 나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이지, 유일한.
p. 234, 몰리나 발렌틴에게
나도 그렇다. 몰리나처럼. 나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이야.
- 난 지쳤어, 발렌틴. 상처받는데 지쳤다구. 넌 모를 거야, 난 속으로 아주 많이 아파.
- 어디가 아파?
- 가슴, 그리고 목...... 왜 슬픔은 항상 거기에, 바로 그 한곳에 걸릴까?
p.246, 몰리나와 발렌틴.
슬픔은 정말로 거기에만 걸린다.
- 그리고 또 어떤 것을 느끼는지 알아, 발렌틴? 하지만 잠시만, 더 이상은 안 할게.
- 뭐야? 말해봐, 그런데..... 움직이지 마......
- 잠시동안 내가 여기 없는 것 같았어..... 여기에도 아니면 저기 바깥의 어느 곳에도......
-......
- 내가 아예 여기에 없는 것 같았어..... 마치 너 혼자인 것처럼.
-.....
- 아니면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닌 것처럼. 마치 지금...... 내가 너인 것처럼.
p. 249 몰리나와 발렌틴
- 내 말은 단지 네가 호의나 아니면 변명 같은 것으로 그것을 보상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네가...... 복종할 필요는 없어.
- 하지만 만약 어떤 남자가...... 내 남편이라면, 그는 나에게 명령을 내릴 것이고, 그리고 그게 옳다고 느낄 거야. 그게 자연스러운 거야, 왜냐면 그런 것이 그를..... 집안의 남자 주인으로 만들기 때문이야.
- 아냐, 집안의 남자 주인이나 여자주인이나 서로 동등해야 해.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관계는 착취의 형태가 될 거야.
- 하지만 그렇다면 자극이 없잖아.
- 왜?
- 응, 이건 아주 은밀한 이야기지만, 네가 물어보니까...... 자극은 남자가 널 껴안을 때..... 약간 두렵게 느낄 수 있다는 데 있어.
- 아냐, 그건 모두 틀린 말이야. 도대체 누가 네 머리 속에 그런 생각을 집어넣었어? 그건 완전히 틀린 말이야.
- 하지만 난 그렇게 느끼는 걸.
- 넌 그런 식으로 느끼지 않아, 넌 누구든 네 머리 속에 그런 허튼 생각을 집어넣는 늙은 여편네들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많이 들었어. 여자가 된다는 것이...... 모르겠어...... 순교자가 된다는 것은 아니야.
p. 282
- 한가지 약속할게, 발렌틴...... 널 기억할 때마다, 언제나 행복할거야, 네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처럼.
- 다른 것도 약속해 줘...... 사람들이 널 존중하도록 만들겠다고, 누구도 널 심하게 다루거나 착취하게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누구도 다른 사람들을 착취할 권리는 갖고 있지 않아. 이 말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라면, 용서해 줘, 지난 번에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네가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 ......
- 몰리나, 다른 사람들이 널 괴롭히게 놔두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
- 약속해.
p. 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