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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5.31 부산에서, 마지막 잔상

부산에서, 마지막 잔상

마치 따분하기 짝이 없는, 지평선만 바라다보이는 외진 동네에 사는 어린 시골처녀들마냥
언제나 떠나고만 싶어했었다.
십수년을 매일 똑같은 등하교길을 오가고 매일 똑같은 하늘 아래를 걷는 것이 인생을 낭비하고만 있는 것만 같았다. 날아 날아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있어보지 못한 어떤 곳들을 떠돌고만 싶어했었다. 그땐 그랬었는데.

졸업식을 전후해서 방문한 고향에 어스름이 깔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의 유년시절의 배경은 지평선 끝의 외진동네와 다름없이 외로운 아파트 숲이었다. 중학교 3학년, 선미와 다투고 화해했던 날 밤에 집으로 오던 길에는 저 건물들 사이의 하늘에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보름달이 떠있었는데. 그 하늘이 이번에는,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한 스물다섯살의 성인에게 가슴먹먹해지도록 습기찬 푸른빛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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