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혹은 놀이'에 해당되는 글 51건

  1. 2007.11.19 겨울
  2. 2007.10.28 결혼에 대하여
  3. 2007.07.25 2007 독서편력
  4. 2007.05.13 창가의 고양이 2
  5. 2007.05.01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6. 2007.03.25 [스크랩]"진짜 어마어마 하네"
  7. 2007.03.25 멋진 그림책 블로그
  8. 2007.03.17 향수 1
  9. 2007.02.25 근황.
  10. 2007.02.10 오래간만의 꿈에.
  11. 2006.07.31 캐리비안의 해적 그리고 "게드전기-어스시의 전설" 2
  12. 2006.07.29 파워퍼프캣 강냥이
  13. 2006.05.31 부산에서, 마지막 잔상
  14. 2006.05.29 계정이사 및 태터툴즈 업그레이드
  15. 2006.05.28 현대판 노예 할아버지 "이흥규"씨 (뒤늦은 SOS를 시청하고)
  16. 2005.11.09 최고령 거북이 175회 생일
  17. 2005.09.12 금자...
  18. 2005.05.26 외롭다...
  19. 2005.05.22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대전!
  20. 2005.05.03 할일이 팍팍하게도 많은 밤
  21. 2005.04.20 미치고 싶을 때, 황산벌
  22. 2005.04.20 나쁜교육
  23. 2005.04.17 다 가둬 놓아야 된다. 다 찍어 놓을 테다.
  24. 2005.03.09 방학, 단상
  25. 2005.02.21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26. 2005.01.28 Global Sunset
  27. 2005.01.27 멋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책]
  28. 2005.01.22 [사진]울루루에서 보았던 일출
  29. 2005.01.21 [영화]시크릿 윈도우
  30. 2005.01.19 What Planet Are You From?

겨울

오늘 올해 들어 제일 살벌하게 춥더니만,
밖이 쿵쿵거려 창문을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어둠속에 이웃집 지붕이 눈에 소복이 덮여 있다.

부시럭 부시럭 눈은 하염없이 내려 밤을 하얗게 새운다.

이것저것 끌쩍대는 랩탑컴퓨터 한구석에 띄워놓은 날씨위젯에는
내일도, 모레도 눈이 내릴거라고 눈아이콘이 두개나 그려져 있다.

지긋지긋하게 싫어하는 겨울로 들어서는 입구인데,
퇴근길에 집어든 김이 피어오르는 오뎅과 가슴을 덮혀주는 뜨끈한 국물에,
역시 오뎅은 추울때 먹어야 진짜 제맛이야라고 생각하고 잠시 행복해졌다.

내가 만약 열대의 섬 해변에 오두막을 지어 살고 싶어하는 오랜 꿈을 이룰수 있다면,
그때는 아마도, 오늘의 칼칼하도록 리얼한 서울의 추위가 그저 흑백사진처럼 뿌옇게 변해버리게 되겠지.
오뎅집 천막 안을 가득 채운 뿌연 김처럼 그렇게 아득한 추억 한자락으로만 남게 되는 거겠지.

겨울이다. 스물여섯의 겨울이 스친다.




결혼에 대하여

 이쯤되면 이 주제에 관하여 쓸 때가 된 거 같지 않은가.

더이상 시니컬했던 중학생도 우울하고 감상적이었던 고등학생도, 

패기있던 대학생도 아닌 이때가 되었으니.

사회인, 더 사실대로 말하면 "생.활.인"이 되었으니 말이다. 

 

언급했던 약 10년동안 나는 몽상가였고, 열정적이었고, 사회 전도적이었다. 

단 한번도 나는 결혼해야지, 어떠어떠한 사람과, 어떠어떠한 장소에서 누구누구와 등등 어쩌구 저쩌구 등등등,

내 결혼에 대해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철들면서부터 독신주의자였다. 

중학교 2학년 바가지 단말머리를 하고 있는 꾀죄죄한 소녀였던 시절부터 그랬었다. 

아, 수정해야겠다. 한때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이 사람과 헤어지면 평생을 불행하게 살 것만 같은 사람, 

결정적으로 70년을 함께 살아도 전혀 지겨워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생긴다면 결혼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절대로 그런 사람은 생길 것 같지가 않다. 그건 자연의 섭리에도 어긋나는 일이 아닐까.

(이기적 유전자라는 논리에 따르자면, 자연의 섭리안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더 나는 배우자, 더 나은 2세를 낳을 수 있는 기회를 찾아다니는 동물적 존재가 아닌가.

어떻게 피를 나누지 않은 사람과의 70년이 지긋지긋해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것도 형제보다 더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70년을.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진심으로. 

좀 덜 친밀한 관계면 가능할 것 같다.

 많은 일을 함께하기는 하지만, 상대의 privacy를 존중해주며, 가끔은 상대의 비밀을 인정하고 캐묻지 않는 그런 관계.

어떤 삶은 공유하고, 어떤 삶은 공유하지 않는 그런 관계. 서로를 신뢰하되,  only me!라는 논리를 내세우지 않는 관계.

 당당히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갈거야, 들어오지마라고 요구할 수 있는 그런관계말이다.

 

우리네 일반적인 사람들은 나이가 차면 결혼을 고려하기 시작하고,

이리 저리 선을 보러 다니고, 만난지 몇개월 만에 60년 70년을 함께할 사람을 정한다.

그것은 그 몇개월동안 앞으로의 70년의 인생을 결정해버리는 것과 같다.

정말로 얼마나 경솔한 일인지... 

내가 보기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보다, 

서른, 마흔을 넘기고서도 결혼하지 않고, 혹은 결혼하지 못하고, 오늘은 이 사람을 사랑하고,  

또 내일은 저 사람을 사랑하는 그런 중년들, 혹은 노인들의 인생이 훨씬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영원히 사랑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리고 영원히 당신을 책임지지 못할 것을 알기에, 

서로를 묶지 않을 수 있는 거 아닌가. 

 

"결혼하지 않는다" 라는 말보다 "결혼하지 못했다"라는 말이 더 불쌍하고, 안타깝게 들릴지 몰라도,

그 말이 정답이다. 어떻게 그렇게들 쉽게 결혼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결혼은 쉽지 않은 것이고, 결혼이라는 궁극의 결론에 많은 사람들이 "안"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못"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게 쉽게 결혼하는 사람들은 이혼도 딱 그만큼 쉬운법이다. 

나는 절대로 이혼이 쉽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고 더 많은 것을 책임질 만한 위치까지 간 사람들은 

 절대로 그렇게 쉽게 처음 정했던 걸 무너뜨려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지금 생각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에 의해서 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을 상처범벅으로 보내게 될 유년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혼 자체가 그렇게 심각하고 무겁고 끔찍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근데도 불구하고 이혼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무섭고, 호러블한 일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딱 그것이 나이어린 친구들이 부모들이 이혼할 때 겪는 감정들이기 때문이다. 어린 영혼들은 이상하게도 그런 일들에 상처를 받는다. 세계를 지탱하고 있던 큰 기둥이라고 할까, 은신처라고 할까, 보호막이라고 할까, 그것이 그냥 쫙 찢겨져 버리거나, 산산조각나는 그런 느낌을 받는 거다. 그들이 그만큼 상처를 받지 않는다면야 나는 이혼을 반대할 어떤 이유도 없다고까지 생각한다.)

 

아이들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그렇게 결혼에 대해 심각해져야 할 필요는 없다. 

한때 죽도록 사랑했기때문에 밤낮 같이 있고 싶어졌기 때문에 결혼을 결심하고, 

그리고 몇년 후 그 감정들이 눈녹아 사라지듯 다 흔적도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이혼을 결심해도 도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쉽게 결혼하는 문제는 어딘가 찜찜하다. 

 그 사람을 영원히 사랑할 자신이 없다면, 내가 내 결심에 관한 믿음이 도저히 생기지 않는다면,

그럼에도 "지금은" 그 사람이 마냥 좋다면 그냥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살면 되는 것 아닌겠는가. 

결혼이란 "영원"이라고 불리는, 신성함 그 자체인 개념에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나에게, 그대에게, 세상에게. 영원히 사랑하겠노라고 맹세하는 것이다. 

그 맹세를 쉽게 하고 쉽게 깨는 것은,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그대에 대한 예의도 아니며, 세상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결코 쉬운 개념일 수가 없는 것이다. 

 

 암튼 이 얘긴 이정도로 하고.

결혼의 형식에 대한 생각도 나름대로 있다. 

 

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에서 유일하게 동감했던 에피소드 하나는  미란다의 결혼식이었다.

자세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이 사람 저사람 모아놓고, 바보같은 서약이나 읊고 있는 남들이 다하는 결혼식이 무의미하고 

바보같아 보인다는 이유로 미란다는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냥 시청에서 문서작성하고 시청직원의 몇마디 말로 끝내려하다가,

나중에 마음을 바꿔 친한 친구와 가족 몇만 시청 잔디밭 앞에 둥그렇게 세워놓고는,

맹세를 하는 간단한 절차만 거친다. 그리고 가까운 식당에서 함께 식사.

왜 맘을 바꿨냐는 친구의 물음에, "사람들 앞에서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크게 말하고 싶었어"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일이 중요하긴 하다.

그래서 요란한 복장과 의식복을 갖춰 입고, 평소엔 하지 않는 화장을 하고, 어색한 미소를 짓고..

등골이 휠만큼의 격식에 맞는 선물을 준비하고, 그러느라 기가 찰 정도의 돈을 쓰고,

그 돈을 메우기 위해(아니, 경조사에 주위사람들과 서로 돕자는 상부상조의 정신으로겠지)

나의 결혼식을 축하해주러 오는 사람들로부터 돈봉투를 받아 챙기고...

이런 일들이 정말로 비합리적이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건 나 혼자만 그런 것인지..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런 우스꽝스러운 격식을 갖출 정도로 중요한 것인가.

 

사실 나는 사람들의 축하는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내가 워낙에 천상천하유아독존 스타일이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냥 가족과 가까운 친구 몇 앞에서 "가 영원히 사랑할 사람이 이사람이야"고 한마디만 해줄 수 있으면 그냥 그 정도가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게 훨씬 행복한 일이 될 거 같다.

+++ 음악에  관한 영화는 항상 보고 나면 뭔가 풍부해지는 느낌이다. 카핑 베토벤을 봤다.

회사에 가는 것은 나를 소모시키고 닳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음악에 관한 영화를 본 후에는 내 안에 뭔가가 차오느는 것 같다. 열대섬에서 바다를 마주하고 누워있는 것도, 낯선 거리를 걸으며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며 여행하는 것도, 이렇게 앉아서 몇마디 글을 쓰는 것도 나를 차오르게 하는 것 같다. 나는 나를 채우는 것들을 더 찾아야 된다. 그리고 평생동안 채우는 일만 하고도 살 수 있을만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 가끔은 초에 불을 붙이고, 마차를 타고, 펜촉에 잉크를 묻혀가며 메모를 하며 사는 삶을 상상해본다. 

음악을 듣기 위해 MP3를 꺼내거나 컴퓨터를 켜서 웹페이지를 들락거리는 대신에,

날짜를 꼽아 좋아하는 작곡가의 리사이틀에 가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떡진 머리를 감추려 야구모자를 눌러쓰며 요 앞 슈퍼에 가는 대신

1-2시간을 걸어서 먹을거리를 사러 장에 가는 삶.

어느 나라이든지 가난과 불편함 고단함같은 것들이 인생을 짓누를 수도 있을 텐데.

평생은 말고 가끔은 완전히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2007 독서편력


그 남자네 집 박완서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1,2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무소유 법정
2030 경제학 스트레칭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대지 펄벅
잘 찍은 사진 한장

-ing
The Alchemist

창가의 고양이

황진이 포즈를 하고 창가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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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냉아 불렀더니 뒤돌아 봐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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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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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모레스페로스->24그램->바벨로 이어어지는 그의 연작(연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들에는 주제를 향해 가는 방법에 있어서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각각 동떨어져 있는 듯한 몇가지의, 누군가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 각각의 이야기들이 살얼음판을 겪는듯한 위기에 다다르게 되면,
마치 교차로에서 길들이 만나듯이 교묘하게 만나서 얼키고 설키는 단계가 된다.
그리고 그때에 각각의 이야기들이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는 동시에 일관성 있는 하나의 목소리로 합쳐지고, 그 주제는 몇배, 몇십배 메아리치듯이 큰 파장을 만들며 관객의 머리속, 아니 가슴 속에 각인되게 된다.

- 그의 영화에는 그냥 여기에 존재하는 삶이 덩어리지고 응축되고 굳어져 그냥 스크린에 그대로 복사된 것만 같은 리얼리티가 있다.
환상이 아닌 실제를 보여주며 거기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삶의 무게감은 "그래, 그냥 저게 삶인거지.."라고 중얼거릴 수 밖에 없게 되어버린다.

- 바벨이라는 제목의 의미심장함은 막이 올라갈 때, 역시나 의미심장하게만 들려오는 엔딩곡을 들으며 앉아 영화를 곱씹을 때 확연해진다. 절대 어렵거나 은유적이지 않으면서 흥미로우며,동시에 사려깊은 그의 연출은 장면, 장면마다 빛이 날 정도로 눈부시다.
말하자면 24그램에서 주인공의 건강상태에 따라 하늘로 날아오르기도하고 지상으로 내려앉기도 했던 황혼 속의 새떼 장면 같은 것들 말이다.

인류가 완벽한 바벨을 갖는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그리고 그건 비단 민족 혹은 인종간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다른 타자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의 문제다.

-남미의 촉망받는 신예에서 할리우드 주류로의 성공적인 진입에 축하를.
 (상업적 면에서) 갈수록 세련되어져가는 그의 영화를 볼수있는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진다는 얘기가 된다. 진정 축복이다.

- 갈씨아! 싸랑!

[스크랩]"진짜 어마어마 하네"

▲ 한 빙산이 호주 남극 영토 근해에 떠있는 모습. 이 사진은 호주 남극국이 제공. 해수면의 상승과 극지 대빙원의 해빙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몇몇 지역에게 이미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을 빚어내고 있다고 최근의 위성 자료들을 분석한 지도적 세계 과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로이터 뉴시스
http://photo.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3/23/20070323006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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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그림책 블로그

모두 http://blog.daum.net/isis177   에서 가져왔다.
이 블로그 진짜 멋짐. 마치 신기하고 예쁜 두꺼운 그림책을 한장한장 쉭 넘겨보는 느낌. 눈요기거리 너무 좋다.
글들도 재미나고.
맘에 드는 그림들만 모아놓고 보고 싶어 복사해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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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기괴하고

예민하고

수려하고

역겨우면서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고

너무도 아름다운 영화.


향기로 세상을 지배한다는 모티브 부터가 매력적이다.

궁극의 미(美, 세상을 지배하는 beauty)를 위한 살인들, 그 자체가 예술로 보여지기까지 함.

뷰티는 보통은 시각에 의한 것이었으나 후각적 뷰티는 더 큰 파워를 발휘할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영화가 힘을 발할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가 영화는 절대 제공할 수 없는 냄새에 관한 영화기 때문이다.

(소설도 마찬가지)

영화가 종합예술이라지만 감각의 면에서 본다면 시각적인 요소가 다분히 많고 청각(음악)은 보너스인 수준인데,

그런 미디어가 냄새를 추앙하고 기리고 있으니 감상자들은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그리고 각각의 관람자들이 상상해낸 그 궁극의 향기 속에서 각자 스스로를 취하게 만드는 거다.



첫번째 희생자, 노란 과일을 파는 그 아가씨는 눈 생김새가 너무도 예쁘다.

한없이 받아줄 것만 같아 기대고 싶게 만드는 눈빛이랄까.

13번째 요소(fatal 요소)의 역할을 했던 맨마지막 희생자도 물론 아름다움.
(피터팬에 나온 그 웬디래!!! 많이 컸다. 웬디.)
그녀의 아버지는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어디서 봤드라...
(해리포터, 러브 액츄얼리에 나왔었대!!!)

음악과 효과음과 시각적 효과, 각 소품들을 포함하는 미쟝센은 훌륭하기 그지없고..

OST를 사고 싶다.


장 밥티스트 그르누이는 자기 세계에 빠진 깡말라깽이 자폐증 환자 같음. 긴 목과 뾰족한 얼굴은 캐릭터에 잘 어울린다. 대사는 거의 없음.

어느 전위예술가들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광장에서의 집단성교 장면. 와우, 어떻게 찍었을까.

(네이버에 쓴 글들은 복사해서 붙여넣으면 왜 줄마다 쓸데없는 P태그가 추가되는 것인지..)

근황.

4개의 교육청을 끝냈다. 36시간을 이상을 잠자지 않고 깨어있는 기염을 토했다.
어느 날밤에 우리는 장비들로 수북한 미니 봉고차에서 내려서 아무말 없이 찬공기를 맞고,
어떤 이는 담배를 태우고, 나는 캔커피를 홀짝이며 아무도 없는 거리를 서성이다,
거사를 치르기 위해 기계소리 윙윙대는 국사에 발을 디디곤 했다.
졸립지 않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긴장감으로 삐쭉 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
망을 고립시켜놓고 하는 작업이 이럴진대, 트래픽을 온전히 살려놓고 하는 IP망 작업은 절대 못할성 싶다.
늦은 밤 업무의 고단함과 패킷하나 떨어뜨릴까 안절부절하는 그 중압적인 스트레스를 어떻게들 견뎌내시는지.

낮에는 지리하고도 너무도 tricky한 configutration 제작과정으로 미치도록 바빴다. 숨쉴 여유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밥먹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웠다. 여전히 시간이 모자랄까봐 노심초사,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성동교육청, 동부교육청, 빡빡한 스케줄은 끝도없이 나를 따라다닐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이상하게도 너무도 바빠서 미칠 것만 같은 요즘에, 마치 영화에서나 보는 flashback처럼
그때의 장면장면이 너무도 자주 머릿속을 스쳤다.
일상이 건조하다고 느끼면 느낄 수록 과거로 자꾸만 회귀하는 것 같다.
길다란 외대앞역의 지하철 선로와 그 양가로 쭉 늘어선 3-4층짜리 똑같은 건물들과, 덩달아 길쭉길쭉하게만 보이는 회색빛 하늘이 지겹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
태양이 머리위에 있어 지나치게 밝고 뜨거운 브리즈번 교외의 등교길이. 개미에게 물려가며 버스를 기다리던  fisher house 바로 앞의 버스정류장. 반짝이는 강물. 머리에 쓰면 마치 mushroom같다고 놀림을 받던 내 빨간 자전거 헬멧. 기린이 뜯어먹고 놀것만 같은 키큰 아카시아 나무들. 그곳의 냄새, 그곳의 습기, 그곳에서 숨쉬던 지금과는 다른 나의 열기. 그 모든 것들이 장면장면 뚜렷하고도 생생하게 바로 눈앞에 있듯이 문득 떠오르는 거다. 그러고나면 가슴이 잠시 뜨끈해졌다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수그러들곤 했다.
엄마는 돈을 벌어서 집을 사라지만, 나는 다시 길위에 서고 싶다.

오래간만의 꿈에.

처음으로 강냉이가 꿈에 나왔다. 그리고 IK.

강냉이를 회사에 데려갔다. 책상밑에 놔두어도 내가 옆에만 있으면 그닥 울지 않는 고양이다.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일이 있어 잠시 어딘가 다녀왔다. 강냉이가 없다.
분명 끼웅끼웅 소리높여 울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어디서 길고양이 들어왔다고 내쫓았을 것이다.
밖으로 나가 찾아다녔다. 어둠이 깔려서 길은 검은색이고, 실제 회사 주변과는 달리 전혀 번화하지 않은 동네다.
그 검은 색 길을 걷다 먼 발치에 붉은 조명을 뿜는 입구가 보인다. 마치 외국의 유명 관광지마다 있는
"Believe or Not"과 같은 인상이다. 입구로 들어서니 고풍스런 조각들과 붉은 카펫, 붉은 벽으로 치장되어 있다.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밖에서 강냉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흰 상의와 검은 바지(마치 웨이터와 같은)로 된 유니폼을 입은 여종업원 두명이
나와 함께 따라 나선다. 전문적으로 사람들의 점괘를 봐주는 직업인에 가까운 인상이다.
입구 언저리에 강냉이가 있다.
그 중 한명이 강냉이를 보고 별과 바꾸자고 한다.
실제로는 내 팔목 안쪽에 별을 새겨주겠다는 의미였으나 분명 그렇게 말했고, 꿈속에서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별과 바꾸자"
그리고 나는 별 망설임없이 거절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생각해 본 일이 있다. 어떤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으면 깊을 수록 그 사람의 부재상황에 대한 상상이 더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거다. 걱정과 불안, 혹은 서글픔등의 감정을 마치 실제인 것처럼 느끼고, 그러고 나면 언젠가는 겪어야 할 그 일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뭐든 "닥치고 보는" 평소 내 성격과는 좀 다른 태도이지만.
어제는 강냉이의 죽음을 상상했다. 몰캉몰캉 부드럽고 뜨거운 배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날이면? 자면서도 꼬리를 움찔거리는데, 어느날 집에 와보니 꼬리조차 움직거리지 않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평소에는 물을 열기도 전에 문 바로 앞에 와서 버티고 야옹거리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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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나도 지금보다 더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고, 감정적으로 좀 더 안정적으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는 더 길게는 생각하지 않았다.

(IK얘기는 다음에..)

캐리비안의 해적 그리고 "게드전기-어스시의 전설"


- 빰빰빠바밤빰빠바빰빰빠바밤!
1편에서 죽었던 그 선장이 나오면서 3편을 예고하며 크레딧이 올라가고 동시에 터지는 음악. 그 순간에 머리속에는 "우이씨, 3편까지 어케 기다려"를 뇌이고 있더라.

- 우리 대리님 말대로 유치찬란하긴 했다. 근 몇년간 뎁의 영화들은 모두 그의 아이들을 위한 것만 같다. (당신 아이들 클때까지 어찌 기다린다우.)
상어머리, 문어머리, 소라머리는 진짜 만화같다.

- 잭과 그의 일당들이 배를 저어 늪을 거슬러 올라서 도착한 그 점술사의 집 장면에서 가슴이 철렁!했다. 이건 완전 몇년 전 몇일 밤낮을 지새우며 플레이했던 "원숭이섬" 시리즈의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거다.
게다가 점성술사의 집 내부 모습이라든지 점성술사 자신의 모습이라든지 모두 딱 그 이미지 그대로다. 영화쪽 캐릭터가 좀 더 매력적인 아가씨라는 것만 제외하고는.
그리고 식인종파트도 너무 심하게 비슷하다. 캐리비안이라는 동네는 원래가 그런 모습들이 서구인들 머리속에 박혀있는 정형화된 이미지인 건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 암튼 백분 넘게 매력적인 캐릭터(개인적으론 잭스패로 1위, 점성술사 2위, 애꾸눈과 땅달보 커플 3위)들과 뛰어다니고 날라다니고 구르고 박살내다보니 유쾌, 상쾌, 통쾌하기 그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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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시의 전설"이라는 부타이틀에서 설마설마했는데
진짜로 르 귄의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란다.
지브리스튜디오지만 하야오가 감독이 아니다. 미야자키씨인걸 보아하니 그의 자손인가?

아름답지만 비극적이고 지나칠 정도로 진지한 르귄의 작품을 과연 어떻게 지브리 특유의
"사랑스러운" 만화로 만들어 낼까??? 궁금함이 무럭무럭 일어나는 한편으로,
나의 얼마 안되는 "페이보릿" 목록에 올라있는 원작을 요상스럽게 바꿔놓지는 않을까하는 걱정도 든다.
소설이란 게 작가가 엮어내는 몫만큼 독자가 개인적으로 구성하는 영역도 무한히 넓어서
같은 작품도 모두들에게 다 다른 작품이 되어버리는 특성이 있기도 하지만,
그래서 '요상스럽다'라는 판단도 다 나의 편협한 시각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서도,
2002년판 스티븐소더버그의 솔라리스와 같은 경우를 보면 최소한 예의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라는 생각도 크게 든다.

암튼 암튼 기대만빵으로 부풀게 하는 영화들이 종종 나와주니 일상의 작은 행복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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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이씨.....
피같은 여름 휴가를 왜 빈둥빈둥 노는 날들로 채우려고 작정을 하고 있었던 걸까??
이리저리 떠돌고자 하는 것은 게으르고 겁많은 이런 나에게도 평생의 로망인데..
여름 휴가가는 다시 없을 기회인데 말야.
돈 많이 모아서 내년에는 꼭 열대아시아로 떠날테다.

파워퍼프캣 강냥이

####우리가 처음 만날 날.

2006년 6월 27일이었나, 28일이었나?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퇴근길, 뒷목이 뻐근해지고 저녁 어스름과 함께 뭔지 모르게 일상을 벗어나고픈 욕망이 스밋스밋 넘실거릴 때. 그때 만났다.

우리 사무실 옆 빌딩은 며칠 전 부터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건물은 부직포와 같은 천으로 감싸지고 낙석주의라고 크게 써붙여 놓았다. 제일은행이 있던 건물이었다. (그가 그래서 제일은행둥이다.)
그 바로 옆에서 목청 돋구며 에웅에웅 거리고 있었다. 내가 손을 내밀었으나 머뭇거리며 다가오다가 다시 멈추곤 한다. 우리 사무실 빌딩의 주차관리소 경비아저씨는 나보고 데려가라고 했다. 오늘 하루종일 저러고 있어. 도망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람에게 다가오지도 않아. 제일은행이 이사가면서 어미가 버리고 간 새끼가 몇마리 나왔는데 이제 쟤만 남았어.
그러면서 내가 데려가려고 맘을 먹고 번쩍 들어올리자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하나 준다. 이거 가져가서 먹이라고. 새끼고양이에게 우유를 주지 말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내가 먹을 요량으로 감사합니다고 하고 받았다.(크흐흐)

한손바닥에 무리 없이 올려놓을 수 있는 크기였다. 병원에서는 이가 제대로 나지 않았으며 한달이 채 될까말까 해보인다고 했다. 집에 데려왔으나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미친듯이 울기만 하였다. 그리고 덜덜덜덜 쉴새없이 떨었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건지 안하는건지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배를 땅에 붙이고 기어다녔다.
작은 움직임, 소리 하나하나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예민하게 굴었다. 낙석이 떨어지는 공사장 한가운데 사흘동안이나 있으면서 많이 놀랬나. 이불 속 같은 곳으로 파묻혀 들어가서 숨고 싶어만 싶어 했다.
젖병을 들고 끊임없이 뭔가 먹여보려 했지만 진을 다 빼고도 한방울도 먹이지 못했다. 말도 안듣고 시키는대로 하지도 않고하여 얄밉기만 하였고, 그래 맘대로 하라지 하는 심정이 되어버렸다. 이틀을 출근땜에 혼자 놔두었는데 집에 가는 길에 그러다 정말 죽어버리는게 아닐까?생각이 드는거다. 이틀을 굶은데다 집에 사람이 없을 때는 정말 하루종일 쉬지 않고 울어제끼는 모양인지 집에 가보면 목이 다 쉬어있곤 하였다. 그 쉰 목 그대로 또 울고 또 울고 하였다.

사흘째 퇴근하여서는 "정말 미안해미안해" 하는 심정되어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사료를 물에 불려서 입앞에 대주니 조금씩 먹기 시작하였다. 떨지 않게 되었고, 계속해서 울지도 않았다. 화장실이 어딘지 몰라 못찾아가곤 했으나 눈치를 보고 쌀때다 싶을 때쯤 모래에 넣어주었다. 그땐 정말 제 똥도 모래로 제대로 덮을 줄을 몰랐다. 엉뚱한 곳 모래만 몇번 앞발로 쓸다가 기어나오는 걸 보니 고양이 맞나 싶었다. 제 똥꼬 그루밍 할 줄도 몰라서 응냄새를 풍기기도 했다. 똥꼬에 분무기로 물을 쏴주면 고개를 배에 파묻고 그루밍을 시작하려 시도를 하지만, 머리가 너무 큰(!)나머지 중심을 못잡고 쓰러지는 바람에 번번히 실패했다.
으이구, 한심스러워. 밉상이야 밉상!하였다. 동물을 무턱대고, 앞뒤안가리고 좋아했던 나도 낯선 동물을 집안에 데려온 상황에서는 좀 달라진 것 같았다. 예전과 달리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아님 상대가 너무나도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어서 그런지 그냥 막 너무나 사랑스럽지는 않았다. 그냥 한 발짝 멀리 떨어져 지켜보고 있게 되는거다.


어느 시점부터 그가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을까?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고개를 돌린다든지 하는 반응조차 없던 고양이가 졸린 눈을 하고 내 배위에 올라서 척 늘어져 잠을 청하던 그 때부턴지, 머리맡을 기웃거리며 말랑말랑한 손으로 내 뺨을 툭툭치던 그때부턴지. 그냥 어느 순간부턴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처음 온날 무자비하게 세척을 당했던 그 현장인 욕실, 그렇게 무서워하던 그 욕실에 똥누러 들어갈 때조차 소리없이 펄쩍펄쩍대며 따라와 굳이 똥냄새를 맡으며 발 밑에 앉아 있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제멋대로 불러도 대답없는 고양이지만 어느 순간 옆에 와서 제 엉덩이와 등을 내 발, 내 등짝, 내 머리통 등등에 기대어 놓고 휴식을 취한다.
자연스럽게 나와 그는 동거인이 되었고, 내 바램을 담은 이름처럼 그는 강한 고양이(강냥이)로 거듭나기 위해 매일 밤 무예수련에 열심히다.

설겆이 하느라 싱크 앞에 선 내 발 사이를 얼쩡거리며 제 털로 간지럽힐 때 그때 제일 사랑스럽다.
또 마치 알을 품는 새처럼 앞발을 접어 가슴팍에 집어넣고, 고개는 꼿꼿이 든 채로 앉아 있을 때 깜찍해서 쓰러질 거 같다. 또또 내 코에 제 촉촉한 코를 살짝 대면서 코를 물어뜯을 때(ㅡ_ㅡ;)도 좋다. 또또또... 암튼.

니가 세상을 살아온 날 중 절반이 나를 만나기 전이었고, 또 반을 나와 같이 보냈는데 어때, 좀 더 행복하니?

####전 여자도 남자도 아닌 몸입니다.

배에 선명한 여섯개의 젖꼭지, 똥꼬와 가깝게 맞닿은 오줌누는 그곳. 나는 틀림없이 암컷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집에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이 혼자 사는 몸이라 강냥이에게 이런저런 말을 나도 모르게(!)하게 되는데, "언니 좀 물어뜯지 마!!!"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곤 했다. 한치의 의심도 없이 여자인 줄로만 알았다.

근데 데리고 온 지 3주정도 되는 날부터 오줌누는 그곳이 점점 올라오더니 이제는 선명하게 남성의 그곳이 되어버린 거다! 강냥이는 남자고양이었다. 근데도 지금도 나는 이 기지배야, 기지배야 하고 부른다.;;;;; 고양이처럼 기지배라는 호칭이 잘 어울리는 동물이 또 있을까.


####니가 주몽이냐? 무예수련 좀 그만 할 수 없겠어???

보이지 않는 적을 매섭게 노려보며 비장하게 덤비는 그 모습은 정말 말로만 듣던 그 상상훈련의 진면목이 아닐 수가 없다. 내게는 절대 보이지 않는데 적의 공격 루트를 치밀하게 상상하는 건지, 이리저리 샥샥 피하면서 적당한 기회를 노려 그 적에게 공격을 가한다.
또는 핸드폰 목줄을 막 흔들면서 이것봐라 이것봐라 하고 놀릴때는 무서운 집중력으로 꼼짝않고 그 줄을 응시하고 있다가 내가 손을 멈추는 그 순간, 타이밍을 놓칠새라 재빠르게 앞발을 들고 펄쩍 날아올라 줄을 덮치기도 한다. 털을 세우고 몸을 들어올려 사이드스텝을 밟을 때는 꺅! 멋있어 소리가 절로 나온다. 고양이가 멋진 동물인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사냥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으른 듯 하면서도 의외로 남이 모르는 때에 정신을 예리하게 갈아 놓는 것만 같다.

다만 다 좋긴 한데, 의자위에 올라갔다가 우당탕탕거리며 식탁에 올라가기도 하고 발톱을 세운채로 누워있는 내 다리위를 평행봉 걷듯이 휙 지나가버리고 하는 것 좀 자제해줬으면 좋겠다;;;; 얼마나 아픈지 알아???!!!!
퇴근하여서도 밥짓느라 저한테 관심없는 듯이 굴라치면 그 발톱으로 서있는 나를 기어올라와서 어깨 꼭대기까지 도착해 올라앉아 있는다! 그러고는 내가 손으로 뭘 하고 있는지 나와 같은 시야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거다. 거기까진 좋은데 강냥이가 어깨위에서 균형잡느라, 발톱을 세우고 앉아 있어서 목 언저리에 상처난단 말이다. (누가 보면 야한 생각할라.)

게다가 요즘은 이빨이 근질근질한지 내 손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내가 "아야!"하고 소리치면 좀 강강도를 조절하며 살살 깨물다 곧 다시 세게 깨물고를 반복한다. "이새키 이거"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너도 당해봐하는 생각에 제 앞발을 깨물었더니 우엥우엥거리면서 저는 내 손을 깨무는 걸 멈추지를 않는다.

잠자다가 이놈이 깨무는 통에 깨기도하고 암튼 무는 버릇땜에 고통스럽다. 더운데도 손발을 이불속에 넣어놓고 자야만 한다.ㅠㅠ

부산에서, 마지막 잔상

마치 따분하기 짝이 없는, 지평선만 바라다보이는 외진 동네에 사는 어린 시골처녀들마냥
언제나 떠나고만 싶어했었다.
십수년을 매일 똑같은 등하교길을 오가고 매일 똑같은 하늘 아래를 걷는 것이 인생을 낭비하고만 있는 것만 같았다. 날아 날아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있어보지 못한 어떤 곳들을 떠돌고만 싶어했었다. 그땐 그랬었는데.

졸업식을 전후해서 방문한 고향에 어스름이 깔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의 유년시절의 배경은 지평선 끝의 외진동네와 다름없이 외로운 아파트 숲이었다. 중학교 3학년, 선미와 다투고 화해했던 날 밤에 집으로 오던 길에는 저 건물들 사이의 하늘에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보름달이 떠있었는데. 그 하늘이 이번에는,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한 스물다섯살의 성인에게 가슴먹먹해지도록 습기찬 푸른빛을 보여주었다.

계정이사 및 태터툴즈 업그레이드

호스팅을 namoweb.net으로 옮기면서 태터툴즈 업그레이드도 하겠다고 맘먹고 있다가
이번 주말, 토요일에 출근했다가 오후에 집에와서 한 4시정도에서 부터 시작을 했다.
한 두시간이면 끝나겠지 하고 있었는데,
백업받고 자료 이전하기가 만만치 않은거다. 그렇게 삽질을 했던 이유가 지금 생각해보면, 이전에 쓰던 무료계정에서 일정 용량 이상 다운로드도 막아놓은게 아닌가 한다. 혹은 트래픽 제한에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백업파일이 한 30메가가 되는데 계속해서 4메가정도에서 끊겨버리는거다....ㅠㅠ
계속 씨름하다가 날밤을 샜다. 세상에 시간이 아침 6시가 되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늘이 새하얗게 밝아왔다.. 엄마가 있었다면 또 혀를 끌끌차며 한 잔소리했을거다..
어쨌든 여차저차해서 이사도 성공 하고,
앞에 떡하니 오아시스 사진도 올려놓고^^ 흐믓~
배경음악도 깔아놓고 싶은데 아무래도 저작권법이 좀 무섭다. 이건 좀 보류하기로.

대학 입학하면서부터였으니까 한 5년전부터 노트가 아닌 웹에다 기록을 하기 시작했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편리해서"였다. 연필을 쥐고 글자들을 써내려가는 것보다 타이핑을 하는 것이 에너지 소모가 덜하고 또 머리속에 파바박 떠오르는 생각을 떠오르는 속도대로 쓰는 것에는 연필보다 타이핑이 낫다.
글자로 써내려가다가 앞에 떠올랐던 내용이 생각이 안나서 답답했던 경우가 많았다. (메멘토적 기억능력)
타이핑 문제뿐만아니라, 정리하기도 수월하고 사진등을 구해다 붙여놓기도 편하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도 편리하고, 여차저차한 편리함때문이었는데...

문제는 이것들이 잃어버리기가 쉽다는 것이다. 내 손안에 들어있는 일기장처럼 영구적보존이라는 문제에 봉착하면서 참 고민을 했었더랬다. 싹 긁어다가 어딘가로 싹 옮겨놓고 싶기도 했고, 내 모든 기록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싶기도 했다. 그런면에서 블로그라는 툴이, 특히나 놀라운 백업기능을 선보인 태터툴즈가 고맙지 않을 수 없다.

암튼 5년간의 기록들이 무섭도록 많이 없어졌는데
태터를 쓴 이후의 기록은 그나마 갖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싸이월드나 다음카페나 네이버 블로그는 쓰지 말아야 한다. 그것들을 한곳에 모으기가 불가능한데다 더욱이 위험한 것은 거기에 쓰인 내 글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거다.(저작권 문제)
네이버는 놀라운 사용자수와 그들이 생성해내는 수많은 자료에 대한 편리한 스크랩 기능때문에 멈추지 않을 것 같지만. 스크랩으로는 계속 쓰게 될 듯.

암튼 행여 말도 없이 내 DB자료 싹 날려놓고 나몰라라 할 것같았던 불안불안한 무료계정 사용에 종지부를 찍었으므로 착실하게 기록을 해나가야겠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무섭도록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일상에서 "자아개념"이라는 맛을 보려면 "성찰"의 방법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고 있고, 그 성찰에는 예전부터 그래왔듯이 "기록"만큼 좋은 것이 없는 듯 하다.

현대판 노예 할아버지 "이흥규"씨 (뒤늦은 SOS를 시청하고)

사람이 어떻게...
양심도 없느냐..

라는 당연한 말이 어떤 경우에서는, 몇몇 경우의 상황에서 통용되지 않을 수 있다.

발길질을 해대는 주인이라는 사람, 그리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자신의 행동에 털끝만큼의 잘못도 느끼지 못하는 그 사람의 부인, "그걸 알아서 뭐하시려구요"라고 일관, 방관하는 동네 사람들, 나라의 녹을 받아먹으면서 부여받은 자신의 역할조차 망각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라는 사람.

이건 "그 사람들, 아주 나쁜 사람들이야" 라고 얘기할 만한 문제가 아니다.
윤리의식까지 갈 것도 없고, 누구나가 갖고 있는 "인권"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 몰이해의 문제이다.
선과 악의 문제, 혹은 감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 혹은 몰이해, 이성의 문제인 것이다.
"인권"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 자체를 아주 모르고 있는 무지한 사람들이라는 거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하니까, 예전에는 다들 그래왔으니까, 다른 동네 사람들 모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는 문제니까 나도 내버려 두지뭐...' 하는 생각으로 50년을 지나쳐 왔을 것이다.

그리고, 당사자인 할아버지는...
바보같이 순박하기만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그랬을 지 모른다. 50년 전에는 돈이 없어 오갈데 없는 청년이 잘 사는 사람에게 얹혀 살면서 부림을 당하고 거처를 제공받는 등의 일이 팽배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고방식대로라면 일년, 이년이 지나면서 자신에게 행해지는 대우가 부당함을 깨달았어야 하고,
그걸 개선시키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했어야 하고, 관철되지 않았을 때 반항정도는 했어야 한다.
내가 제공하는 노동력에 비해 제공받는 재화는 터무니없이 적다. 당신이 나를 부리긴 하지만 폭력을 행사할 권리는 없다.
시대가 변해서 내가 더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 등등 말이다.
베란다 쓰레기 통 옆에서 앉을 곳 하나없이 쭈그리고 먹는 식사에 기대지 말았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학대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상황에 점점 익숙해 져 갔을 것이고,
상황이 지속되면서 자신에 대한 존엄감을 잃어가고 오랜 학대로 인한 정신적 손상으로 진행됐음이 뻔해보인다.
그리고 주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의 폭력이 그를 옭아맸을 것이다. 가엽게도 그에대한 "공포"가 오히려 그 지옥으로부터 떠나지 못하게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실수 있으세요, 누가 할아버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어요."
- 흐르는 눈물

보는 내내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저 모든 사람들에 대한 답답함, 화만 치밀어 속으로 욕을 퍼부어 대다가,
이 대목에서 갑자기 울어버렸다. 할아버지는 말도 없이 한 줄기 눈물만 흘릴 뿐인데,
나는 진짜로 '슬퍼져' 울었다.
이전까지는 50년의 학대끝에 할아버지는 약간 온전한 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그래서 스스로의 상황에 대한 비관이나 통탄도, 분노, 슬픔조차도 느끼지 못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노인복지전문가의 따뜻한 이 한마디 말에 할아버지가 흘리는 눈물은 그 분이 그저 표현할 수 없는 상황때문에 모든 걸 묻어두고 있었을 뿐, 감정들은 생생히 느껴왔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 사실이 무지하게 슬펐다. 그 분이 그 모든 암담한 감정을 느끼지 못해 왔다면 나는 그냥 화만 나고 말았을 것이다. 느낄 수 있었으나 다만 조용하셨을 뿐이란게 참으로 가슴 아팠다.

"누가 제일 보고 싶으세요?"
"친아주머니가 보고싶어요"

"누님 보고싶지 않으세요?"
"안 봐도 괜찮아요"

50년이 지난 후에 처음으로 발음하는 가족들의 이름. 그의 지난 세월이 온전하게 보상받을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거대한 조직이 다수를 무참히 짓밟는 횡포는 역사속에서 많이 보아왔다. 전쟁, 인종 학살, 나치즘, 식민정책 등등 말이다.
군중의식 속에서 인간존중의 윤리가 얼마나 휴지조각같이 그 빛을 잃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경계대상 1호다.
그런데 그런 거창한 군중의식이 아니더라도 집단적 '무관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나 역시도 '뭐, 저 사람들은 원래 그냥 그러려니'하고 무심히 지나쳤을 그 마을 사람들의 한 명이었을 수 있다. 그 사실이 무서워진다.

정신을 예리하게 닦아 놓을 필요가 있다.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나도 그냥 '지나쳐' 버리는 사람이 절대 되고 싶지 않다.
어쩌면 청소년기 시절 학교 교실에서 목격했던 폭력의 현장과, 그 현장에 있었음에도 목소리를 내어 이 폭력이 부당함을 말하지 못했던
내 자신에 대한 충격이후로 내 정신은 점점 더 무뎌져 가고 있는지 모른다.
(이 일은 어른이 되었음에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아무도 큰 소리를 내어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쉬쉬하는 모양새였다. 가해자가 꽤 영향력있던 존재였을 것이다.
오히려 두둔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 소리없이 암암리에 진행되는 추악도록 못생긴 여론에 치를 떨었었다.
아무 말없이 듣고만 있는 내 자신이 싫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유년기의 관문이 아니었나 한다. 그 일 이후로 나는 세상물을 먹은 걸까, 아님 더 많이 자랐던 걸까. 이때 일에 관해 다음에 기록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더이상 무뎌지지 않도록 다잡고 싶다. 절대 방관자따위는 되지 않을 것이다.

최고령 거북이 175회 생일

무궁화꽃 좋아하는 최고령 거북이 175회 생일

[쿠키뉴스 2005-11-09 05:21]



http://news.naver.com/hotissue/read.php?hotissue_id=279&hotissue_item_id=24489&office_id=143&article_id=0000002018§ion_id=7

[쿠키 지구촌=호주] ○…지상에서 사육되고 있는 현존 동물 중 세계 최고령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거대 갈라파고스 육지거북이'(Giant Galapogas Land Tortoise) 해리엇이 오는 15일 호주 퀸슬랜드주 비어와 소재 '호주동물원'(Australia Zoo)에서 175회 생일을 맞는다.

호주의 유명한 악어사냥꾼 스티브 어윈이 운영하는 호주동물원 웹사이트(www.crocodilehunter.com.au)에 따르면 암컷인 해리엇은 동물학자들에게 거대 거북종의 장수능력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것.

호주동물원측은 또 해리엇이 조금도 늙어 보이지 않고 여전히 자라고 있는 듯이 보인다면서 허브차 등 약용으로 쓰이는 히비스커스(무궁화속 식물) 꽃을 즐겨 먹고 사람들이 긁어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밝히고 있다.

남미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1830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해리엇은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이 1835년경 영국으로 데려갔다가 1842년 호주로 보낸 3마리의 거북이 중 한 마리로 다른 두 마리는 죽고 해리엇만 혼자 남게 됐다.

'악어사냥꾼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호주동물원의 샐리 타운센드 홍보조정관은 해리엇이 매우 건강한 상태며 해마다 동물원에서 11월 15일을 해리엇의 생일로 지내 맛있는 음식으로 잔치를 베풀어 준다고 말했다.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호주온라인뉴스 www.hojuonlin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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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자...

뒤늦은 기억 들추기


아... 금자씨 너무 재미있었다.
너무 몰입해서 봤던 나머지 엔딩음악 시작할 때 나도 모르게 박수를 짝짝 쳤다가
아무도 안 치는 걸 깨닫고 바로 멈췄다.
복수가 어떻고, 이영애 연기가 어떻고 줄거리가 어떻고.. 주저리 주저리 다 집어치우고 나더라도,
한계가 없는 이 영화의 '독특함' 그것 자체로 얘기 끝이다.
늦은 여름밤비로 한강은 평소보다 더 희번득거리고 있었는데
극장을 나오면서 내려다 보이는 그 풍경이 더욱 더 현실감 없이 만들고 있는 거 같았다. 한 10분 정도를 영화속을 걷는 듯한 느낌으로 복도를 걸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돈을 내고 영화를 보러 왔었지'하는 느낌, 현실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모국어로 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아마도 이 영화가 영어 혹은 다른 나라의 언어로 만들어진 영화였더라면 이 정도로 몰입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번득 들었다. 그리고 혹 여성화자가 아니였더라면 하는 생각도.

- 개연성에 대해...
순전히 개인적인 감성, 개인적인 경험, 개인적인 느낌에 근거하여 감상 했던 터라,
남들에게도 이 영화가 나에게만큼 깊은 의미로 다가왔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해보지 않은 사람들(혹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질 만큼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금자의 복수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만큼 미워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복수뒤에 오는 짙은 허무감( 이건 곧 이 영화 후반부의 허무감)을 가슴으로 공감할 수 있을까.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건방지게도) 이해했다고 말할 것이다. 누군가 금자의 복수에는 설득력이 없다.고 하는 걸 들었다. 영화속에서 금자가 그만큼 복수에 집착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옳은 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설득력 없는 그 빈 공간을 내 개인적 경험으로 채워나가면서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그만큼 몰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영화는 금자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였고 금자씨의 복수가 아니라 나의 복수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 허무는 굳이 그렇게 일을 벌이지 않더라도 현실 속에서 충분히 예감할 수 있었던 그 허무이기 때문에. 결국 나도 당신도 피해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 특이함에 대해...
나는 올드보이를 보지 않았다. 복수는 나의 것도. 내가 다른 이 감독 영화를 본적이 있었던가...??? 그런 것 같지 않다. 암튼 올드보이는 촬영장면을 잠시 구경도 했었고 너무나 많은 화제를 모았어서 당연히 봤을 듯도 한데 오히려 그런 이유땜에 보기도 전에 질려버려서 안 본 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내게 금자씨의 독특함은 거의 충격적이었다. 거의 모든 영화는 헐리우드 출생만 아니면 독특하게 느껴진다. 그건 내가 미국식 영화에 얼마나 길들여져 있느냐를 반증하는 거다. 그게 뭐 열등하거나 별볼일 없는 영화들이어서 그런게 절대 아니고, 다들 알다시피 구조화, 정형화 된 내러티브, 또 그것의 재탕에 재탕.. 잘 알지 않는가. 이미 형식화된 미덕에서 벗어나기란 얼마나 힘든지.. 독특하고자 한다면 이 정형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되는 셈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금자씨는 이때까지 본 것 중 달라도 정말 다르다. 미국영화 같지도 않고 프랑스 영화 같지도, 한국 영화같지도.. 일본, 이란, 뭐 그 어느 누구 영화같지도 않다. 이건 박찬욱 영화다. 이건 아마도 감독에겐 커다란 찬사가 될 것이다. 이런 영화를 보면 나같은 평범한 애들이 젊은 혈기로 '나도 영화 만들래'하며 설쳐대지 않았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창의성, 재능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재미있다는 거다. 독특하면서 지루한 영화는 많이 있었다. 지루한 것이 작가주의인 것 마냥. 근데 이 영환 재미있잖아. 예상이 깨트려지는 재미(반전 같은 거 말고, 같은 이야기를 해도 이때까지 봐왔던 흐름이 아닌 다른 흐름으로 얘기하는), 피 튀길까봐 비옷 입는등의 블랙유머, 빠른 진행, 충분하면서 쉬운 설명같은 거 말이다.
암튼 최고구나. 대중영화의 기록적인 시도다.

외롭다...

이런 기분은 때때로 찾아왔었다.
그저 그런 일상사처럼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다.
5호관과 4호관 사이, 보라색이 되어버린 하늘 아래를 걸었던 그때처럼. 그리고 그럴때는 꼭 공기중에 미세한 습기가 서려있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내렸을 때는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염색공장 냄새가 풍겨지기도 하겠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상태가 이런 작은 요소요소들과 함께 기억에 각인되서어서 고향을 떠난 지금에도 그곳의 냄새와 풍경으로 모든 감정상태를 경험하는 거 같다. 아파트단지를 향해 오르는 그 절벽길을 지나고 있을 때는 빗방울이 하나둘 씩 떨어지기 시작하는거다. 하늘은 보라색에서 붉은 빛으로 바뀌어 있을 거고.

사랑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I love you, baby라고 말하기는 쉬운 편이다. 모국어와 비모국어의 차이인가.
감정의 적절한 표현이 없으면 모순적이게도 감정의 공황을 겪게 되는 듯 하다. I love you my sweetie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그때는 지금보다 행복했던듯 싶다. 지금도 그렇게 징그럽게 말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수두룩한데도 그러질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외로운건지도 모른다. 결국은 내 잘못이군.

언제쯤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을만큼의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
언제쯤 그 만큼 자라있을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대전!

좋았어! 서울 온 김에 꼭 구경하고 가잣. 경대에서 싸게 할 때 놓친거 만회다. 大전이라 하니 뭔가 다르긴 하겠지. 설레두근

http://www.hcbphoto.com/

결정적 순간은 삶을 현장에서 붙드는 것을 허용한다.

그는 사진의 톨스토이였다. 깊은 인간애로 20세기를 증거하였다.
(Richard Avedon)

나는 거기에 있었고 또 그 순간 삶이 나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어떤 방법이 있었다.

시대의 진정한 증인으로서 그는 정열적으로 20세기를 찍으면서, 자신의 범 우주적인 불멸의 시각으로 우리로 하여금 인간과 문명의 변화를 영원히 기억하게 만들었다."

"사진이 그 주제를 가장 밀도 있게 전달해야 하는 것이라면 형식의 관계도 엄격하게 수립되어져야 한다. 사진은 실재하는 사물들의 세계 속에 내재하는 리듬에 대한 인식을 다룬다 ... 한장의 사진에 있어서 구성은 눈에 뛴 요소들의 동시적 결합과 유기적 종합의 결과이다 ...

사진에는 새로운 종류의 조형성이 있는데 그것은 촬영 대상의 움직임에 의해 만들어지는 순간적인 윤곽의 생성이 있다. 우리는 마치 삶의 전개에 있어서 예감적인 방법이 있듯이 움직임의 조화 속에서 작업한다. 그러나 하나의 움직임 속에는 그 동작의 과정에서 각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는 한 순간이 있다. 사진은 바로 이 평형의 순간을 포착해 고정시키는 것이다."
- 결정적 순간 서문에서 -

나는 사진 찍기를 너무 좋아한다. '결정적 순간' 그 즐거움은 끝이 나고 완결된다.


이걸 보고 그에게 반했었지.


절정의 찰나. 결정적 순간. 촌각에 발산되는 조용한 폭발. 예전부터 수없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가 처음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움...

할일이 팍팍하게도 많은 밤

할일이 팍팍하게도 많은 밤 비틀즈 애비로드를 켜놓고 또 현실도피 시작이다. 낼 프리젠테이션~~~ 슬라이드 한장도 작성 못해놨는데, 아침 9시 첫빠따(!)로 발표구나. 아, 불타는 스릴이구나. 악투푸스 가든의 인트로, 들을 때마다 뽕짝같다. 맘에 든다. 으흐흐.

도대체가 내 홈피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째서 그렇게 조회수는 꾸준히도 올라가는지 민망하기 그지없다. xml 공유도 안하고 싱크도 다 내렸건만.
그리고 세상에나 오늘은 야후, 다음같은 메이저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여기가 나온다는(정확히는, 나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리퍼러에 거길 통해서 누가 온 흔적이 (꽤 많이) 있는거다. 윽, 부끄러워서 쑥스러워서 싫다. 이봐요들, 어떻게하면 그런 메이저 싸이트들과의 링크를 피할 수 있는게요? 검색어까지 넣어가며 찾아온 데가 이런 싸이버상의 정보 포화현상을 가속시키는, 쓰레기 정보로 대역폭을 잡아먹는 개인잡동사니 사이트라는 걸 깨달았을 때 당황했겠군.
독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건방진 이곳 내용들에 대한 공개 사죄를... ㅠㅠ

어쨌든 간에 음악 끄고 발표준비 해야겠다.

꺅 내방에 큰 거미 나타났다. 저걸 어떻게하지.. 개구리가 나타나질 않나. 귀뚜라미가 뛰다니질 않나. 야생 동물들이 득실대니 내서널 지오그래픽이 따로없구나. 흑흑, 개구리같은 예쁜 것들만 나왔으면 좋겠다.

미치고 싶을 때, 황산벌

뒤늦게 봤다는 거 티좀 내놔야 겠다.

황산벌 정말 까르륵이다. 정진영 아저씨 와일드카드에서 보고 최고라 생각했는데 김유신, 정말 멋지십니다. 한국배우 중 최고다.. 아, 외모로는 정우성이,,, 아, 최민식 연기도 최고라 생각했는데.. 어쨌든 최고중 한명.
사투리 걸쭉한 의자왕, 계백이(하하핫), 김춘추, 김유신이라는 설정, 반항적 기색이 역력한 화랑 관창, 황산벌 전투 백제 3承1敗에서 그 3개의 承들이 욕싸움, 장기싸움등등이 포함된 거라니..
인간냄새나는 역사인물들, 그리고 그들 뒤에 정말로 있었을 법한 비만 오면 샥신이 쑤시는 신라노인네들, 보리키우다 온 전라도 거시기(구식이라던가)까지.
코미디를 기본으로 밀고 있기 땜에(근데 코미디 영화는 아닌 듯 하다.) 쪼끔 오버하는 거 다 봐줄 수 있다. 멋진 영화.

그리고 미치고 싶을 때.
독일 사는터키인들 얘기. 터키어인지 독어인지 알 수가 없다. 간간히 영어도 좀 나온 듯 했고. 여튼 그 쪽에도 멋진 배우가 많구나. 약간 거친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알고보면 소설 소나기같은 착하고 순박한 사랑얘기다. 사랑이란 게 그럴 수 밖에 없는 건가보다. 정말 재미있게 봤다.

나쁜교육


엔딩 음악이 흐르고, 한동안 멍했다.
이거 이거 대단히 재미있다.
마놀로 신부가 행한 '나쁜 교육'을 비판하려는 것도 아니고, 동성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영화도 아니다. 가르시아 베르날의 요란한 드랙 분장, 동성애 섹스장면 같은 것들은 모두 이영화의 초점은 아니다.(꽤 중요한 요소지만)

이 영화는... 사랑이야기다.
욕망과 질투, 탐닉 그리고 배반에 관한 여느 사랑이야기말이다.

별다른 특별한 무엇도 아닌 이나시오, 엔리케, 후안, 마놀로 신부. 네 남자의 그렇고 그런 사랑이야기라는 걸 아주 뒤늦게 깨닫게 만든다. 그래서 더 맛깔스러운걸까. 오직 가르시아 베르날땜에 본 영화기 땜에 별다른 기대는 안했지만, 주워 들은게 좀 있어서 카톨릭 학교를 배경으로 어린 동성 학생에게 찝적대는 신부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려니 했었다. 근데 출판사 편집자가 된 신부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풀려나가면서 딱, 멍해지기 시작했고(삘받는 영화들은 다 이런다) 엔딩과 함께 뭔가 유쾌한 기존방식의 뒤틀림, 말하자면 신선한 어떤 걸 경험한 듯한 (기분좋은) 충격이 밀려온다.

'필름 누아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전형적 '팜므파탈' 역할로서의 후안. 이 얼마나 재밌는 발상인지.
다시 말하고 있는 거 같지만, 대단히 재밌는 영화. 탁월한 스토리 라인과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예술인 영화. - 사실과 허구가 묘하게 겹치고 또다른 액자가 나타나 진실을 까발리는 스타일(뭐, 당신이 동성애에 대해 특별히 역겹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는 별 상관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도 보면서 좀 거시기했다.)

p.s - 또다시 스페인어 맘에 든다. 아모레스 페로스부터 시작된 증상이다. '시'가 아마 예스인가? 워터도 배웠는데 까먹었네.
- 페드로 알모~~ 머시기 감독. 기회되면 다른 것도 봐야지. 고등학교 지구과학 선생님이 피프에서 보고 핏대올리며 얘기해주던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 이 작자꺼라지? 그녀에게도 봐야겠다. 이 쪽이 볼 기회는 더 많겠군.

다 가둬 놓아야 된다. 다 찍어 놓을 테다.

흐르는 시간이 너무너무너무 아쉽기만 하다.
징그럽게도 나이 많이 먹어보니 알거 같다.
사람들이 추억하기 위해 현재를 쓰는 이유를. 미래를 위해 지금 사진을 찍는 이유를 말이다.
우연찮게 발견한 옛사진 안에 들어 있는 지금과 너무 다른 나, 아니 그때 그 시각 그곳에 흐르던 냄새를 발견하는 기분을 이제야 알았다.
그러니까 나도 사진 안에 가둬두고, 어제 만난 고양이도 가둬둬야 하는 거다.

며칠, 아니 몇 주전? 아파트 상가 문방구 앞에서 어눌한 고양이를 만났다. 째려보기만 할 뿐 도망가지 않는다. 쪼끔 고민하다가, 사람들이 빈번하게 지나다니는 도로 변에 쭈그리고 앉았다. 한참을 눈싸움했다. 시간이 흐를 만큼 흘렀다 싶을 때 "야옹야옹" 해봤다. 째려보기만 한다. 같이 또 한참을 째려보다 다시 "야옹야옹" 했다. 그때 대답한다, "야옹야옹"

마음을 여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어린왕자에서 말하는.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다른 특별한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옆에 앉아 있는 거다. 그걸 처음 배운 후부터 항상 동물들한테 적용 시켜보는 데 거의 모든 경우 통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사람한테 적용시켜 볼 만큼의 용기가 아직은 없다. 나는 길들여 지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사람이니.)

어쨌든 목덜미를 쓰다듬었더니 좋아라 한다. 같이 놀다가 내 까만 바지는 온통 흰털로 뒤덮였다. 호주에 사는 회색 고양이 스티치가 생각났다흑. 털투성이 바지로 집에 들어왔더니 엄마가 야단을 쳤다.
그 담날, 그 담날.
집에 오는 밤길에 문방구 옆 창고 앞에서 "야옹야옹"하면 그 고양이가 사뿐사뿐 걸어나왔다. 그냥 '널 데리고 갈 수 없어'라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더욱 더 녹아내리는 애교를 선사했다.

그리고 오늘 문득 고양이를 불러 보지 않은 지 몇주가 지난 것을 생각해냈다. 이제 문방구 앞에서 불러도 나오지 않으리라. (그 고양이가 로컬고양이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 할 수가 있다. 왜일까.)
그리고 생각했다. 학교 신학 주위에서 2년 전에 본 떠돌이 개는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내 방 벽에 붙어 있는 데. 그 고양이도 가두어 둘걸하고. 몹시 몹시 아쉽다. 사랑했던 것은 다 가둬둬야 한다.

방학, 단상

오후 늦게서야 잠을 깬다. 14시간을 잤다. 동생은 내가 죽은 줄 알았다고 하였다.
전혀 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의식이 돌아와서 창문으로 하얗게 부서지듯 갓 뜬 태양빛과 훈훈하게 덥혀진 이불 속 기운을 느끼면, 실눈을 떴다가 다시 감는거다. 모르겠다. 뭔가 거부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어릴 적에 맞대고 싶지 않는 문제가 생길때 항상 잠을 자곤 하던것처럼.
오늘 공허한 느낌에 생각했다. 학교수업과 같은 의무가 내게 없을 때 매일 아침 나를 눈뜨게 만들 수 밖에 없는 삶의 '희망'은 무엇이 있을까. 의무가 아닌 의지, 순수한 목적, 희망. (만일 그 의미가 퇴색하지 않았다면, 그래,)희망.
내가 사랑을 하고 있다면 아침 일찍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럴 것 같진 않다. 나는 근본적으로 나만 좋아하는 아이이므로. 결국에는 '게으름'이라는 문제로 귀결되는구나.

어제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또 '삶의 희망, 의지, 목적'이라는 테마에 다다르게 되면서 결국은 '넌,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없어서 죽음을 택했니.'라고 묻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울었는데 그러는 내가 얼마나 위선스럽고 가증스럽던지.

내가 수없이 많은 좋은 사람들을 떠나면서, 혹은 떠나 보내면서 냉정하게 보일 정도로 무덤덤했던 이유는 지금와서 새각해보건데, 나는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느껴진다. 가끔 얼굴을 맞대고, 소소한 일상사를 나누고, 식사를 같이 하고 거리를 걷는 것 같은 일 따위가 모두 괜찮은 일이긴 하지만, 내게 더 큰 의미가 있는 건 '당신이 어딘가에서 숨쉬고 있다'는 신념같은 것이다. 그걸 생각할 때마다 큰 위안이 된다.
마치 그 안에 있는 우물때문에 사막이 아름다운 것처럼. 그곳에 놔두고 온 장미 하나 때문에 모든 별이 아름다워보이는 것처럼. 내가 알던 멋진 사람들. 한때 소중한 기억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이 세상 어디에 살아있기 때문에, ( 세상 사람들 중 적어도 몇 명은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곳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살아가기가 좀 더 수월하게 느껴졌었던 것 같다. 비록 우리 모두가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진 않을지라도, 그런 식의 연대감이 내 정신적 지주였던 듯 하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언젠가 우연히 세상 어느 곳, 어떤 길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걸 명백하게 깨닫게 된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아이의 소식을 접했을 때였다.

'죽음'이라고 단언하기가 어색한 것은 내가 아직 그걸 믿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받아들이지 않고 있긴 하지만, 그 소식을 접한 순간에 '네가 어딘가 살아있을 거야'하는 무언의 신념은 크게 소리를 내면서 깨지는 것을 느꼈고, 그때 느꼈던 충격, 상실감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무거운 것이었다. 순간순간 이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지금도 가슴 한구석이 감전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손 한번 내밀지 않았으면서, 먼저 웃어준 적도, 먼저 같이 거리를 걷자고 어색한 전화를 걸지도, 수다스런 인사를 하지도 않았으면서,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으면서 은연중에 '왜 그 신념을 먼저 깨버리느냐'고 그 앨 탓하고 있었다. 우리가 공유했던 시간만큼 가치가 있는 '무언의 약속' 말이다. 그걸 왜 지키지 않느냐고. 그건 '어딘가에 살아있어 줄 것'이었다.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이기적인 것인지. '먼저 다가서지 않았던 것'에 대한 오랜 죄책감을 그런 식으로 변명하고 있는거다.

우리가 다녔던 고등학교 뒷문에서 시작하여 괴정 지하철역까지. 수없이 많이, 마치 끝이 없을 것만 같이 되풀이되던 귀가길이 떠오른다. 고요한 산자락을 깨치면서 끝나던 야자시간과 북두칠성을 헤아리던 나즈막한 언덕, 그 무거운 밤공기와 조명속의 괴정 지하철역. 네가 버스에 오르던 주택은행 앞. 몇시간이고 찻길 옆 새집의 새를 구경하던 토요일 오후 같은 것들. 네가 나에게 물었던 장기기증 이야기. '우리가 친구일까?'와 같은 질문들. 그리고 내가 너에게 해주었던 '빛보다 빠르다면 과거로 갈 수 있대'하는 이야기들.

그 길위에서 마주했던 어린 날의 우리 생각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너와 나는 정말로 다른 아이였어. 정말로 극과 극이었지. 나는 우리가 서로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나는 왜, 나를 좋아하듯이 너 자신을 더 좋아하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을까. 니가 니 욕심만큼 충분히 예쁘지 않아도 말이야.(언젠가 알게 될 거라고,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겠지.)

철이 들고 부터 학생이라는 신분과 미성숙이라는 굴레는 내게 언제나 벗어나고 싶은 극복해야 할 어떤 것이었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의 모범적 학교생활은 아이러니하게도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요건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른이 되지 않고 영원히 학생이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발랄한 또래들이 내 눈에는 신기하게만 보였다.
지금껏 나는 고등학생 시절을 회상하기를 회피해 왔는데, 그 아이로 인해 떠오르는 건 그저 치기어린 작은 나와 순수한 생각들, 관심사들, 그리고 아름답기만 한 추억들이니 우스운 일이다. 나는 아무것도 준것 없이 옛날처럼 여전히 받기만 하고 있구나. 미안해. 정말 미안해.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그 체 게바라라고?? 믿을 수가 없다. 푸훗.
아모레스 페로스. 호주 가기 전이였으니 1년 점 쯤에 우연히 포스터와 홍보카피만을 보고 꼭 보고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영화가 지금껏 한 둘이 아니지만 실현된 게 몇개 없으나, 오늘 우연히 이 영화는 본거다.
그리고 영화에 대해 할말도 좀 생겼지만, 가장 임팩트가 컸던건 내 취향 배우를 또 하나 건졌다고 생각했다는 것.
그리고 또 웃긴 건 얘를 보았던 게 이 영화가 처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거다.
이투마마에서 그 까불락거리던 두 꼬마놈 중 하나였다고. 그리고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의 그 체 게바라라고!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이남자의 얼굴과 다른 두명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판의 포스터 위에 적인 아모레스 페로스의 카피는 이랬던 거 같다.
betrayal, sin, selfish, hope, pain, death, what is love?
사랑하고 배신당하는게 이 남자의 역할이라, 그리고 광고를 했었다는 감독때문인지 뭔지. 크고 꽉차고 감정을 밑바닥까지 있는대로 내보이고 거기다 불안하기까지 한 이자의 눈은 다른 두영화에서 본적이 없는 거 같다.

자라지 않은 미성숙함? 그게 다는 아니다. 한번은 세상에 마음을 열고 그리고 그 세상을 사랑한 사람만, 그것때문에 상처입은 사람만 그런 눈빛을 갖는다. 그게 연기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연기를 한 배우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 상처입어 보지 않으면 견고하긴 하지만 자라진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언제나 견고지만, 사실은 내 껍질이 견고한 것일 뿐이며 속은 예나 지금이나 물렁하기 짝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를 보면 그래서 좀 더 치열하게, 드라마틱하게 살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워지는 것 같아.
http://www.nkino.com/Articles/Article.asp?Id=14134

Global Sunset


The picture is of Europe and Africa when the sun is setting.
해가 지는 순간의 유럽과 아프리카 사진입니다.

Half of the picture is in night.
사진의 반은 밤이구요.

The bright dots you see are the cities lights.
그 중에 반짝이는 작은 빛들은 도시로부터 나오는 불빛이죠.

The top part of Africa is the Sahara Desert.
아프리카 대륙의 제일 위는 사하라 사막입니다.

★This photo is reportedly taken by the crew on board Columbia on its last mission.
이 사진은 알려진바로는 콜럼비아 우주선이 마지막 임무를 수행할때 우주비행사가 찍은것이라고 합니다.

★This photo was sent via satellite, on a cloudless day.
구름한 점 없는 날 찍힌 이 사진이 인공위성을 통해 전해졌다는군요.

Note how the lights are already on in Holland, Paris, and Barcelona, and how it's still daylight in London, Lisbon, and Madrid.
이미 어두워진 네덜란드, 파리, 바르셀로나의 불빛과 아직도 환한 낮인 런던과 리스본, 마드리드를 보세요.

The sun is still shining on the Straight of Gibraltar, and the Mediterranean Sea is already in darkness.
태양이 환하게 비추는 (스페인 남단의) 지브렐터해협과 이미 어두워진 지중해바다도 보이지요.

In the middle of the Atlantic Ocean you can see the Azores Islands; 대서양 중간의 (포르투칼 앞바다에 있는) 아조레스 군도도 보이시나요?

below them to the right are the Madeira Islands;
그 밑에는 마데이라 제도도 있구요.

a bit below are the Canary Islands;
조금 더 밑에는 카나리아 제도도 보인답니다.

and further south, close to the farthest western point of Africa, the Cape Verde Islands.
그리고 남쪽으로 좀 더 가면 아프리카의 서쪽 끝 가까이에 카보베르데(섬 나라)도 확인 하실수있습니다.

Note how the Sahara is huge and can be seen clearly both during daytime and nighttime.
밤과 낮이 동시에 공존하는 사하라 사막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도 주목해보세요.

To the left, on top, is Greenland, totally frozen.
왼쪽 위에 보이는 그린랜드는 완전히 얼음덩어리네요 ^^;

(멋진 사진과 번역하느라 수고한 Ricky에게 박수를...짝짝짝!!!)

*역시 어느 분 싸이에서 퍼왔다.
아, 아프리카에 가고 싶어라.

멋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책]

어느 분 싸이월드 홈피에서 봤는데 까먹었음.

[사진]울루루에서 보았던 일출

이제는 정말로 꿈인 것만 같다.

비행기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 보았더니, 이때까지 내가 살던 곳이 그저 2차원 평면으로만 보였다. 사람들은 땅위에 딱 붙어서 엉금엉금 기어가고 마치 담요 아래와도 같은 건물들로 총총 사라지더라.
*
Middle of nowhere, 들판 한가운데서 새벽 4시반에 침낭을 털고 일어나 잠이 덜 깬 눈으로 차 안에서 졸다가 맞이한 그 거짓말 같은 일출.
동쪽 땅 아래서 점점점 올라오기 시작하는 태양은 서쪽 하늘로 거대한 광선 줄기들을 던지고 서쪽 하늘에 드리운 구름들이 다시 그 광선들을 사방으로 반사시키기 시작했다. 대지와 구름 사이, 그 명백한 3차원 "無의 공간"에 쇼처럼 펼쳐지는 빛의 산란들, 빛의 향연.
지금은 그저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이, 내가 그 쇼 안에 있었다는 것이, 아직도 그 곳이 존재하고 매일 아침 그 쇼를 어김없이 시작할 것이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거짓말인 것만 같다.

(땅에 볼록하게 솟은 검은 것이 거대한 돌, 울루루)

[영화]시크릿 윈도우


이젠 너무도 뻔해진 "결국 니가 미친놈이였어"식의 이야기는, 반전보다는 그 식상한 반전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관건이다.
("결말이 중요해"라는 모트 말도 일리가 있지만. 키득.)

shooter(shoot her), shoot bay(bay of shoot이었나??)등으로 힌트를 주려 한점. 뉴욕 캅 친구랑 만나기로 한 날 일어나보니 이미 차가 시동까지 결려 있던 장면,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데 멀쩡하던 잡지가 찢겨 있던 장면 같은 것들로 풀어내는 것은, 시도는 좋지만 뭔가 특별한 점이 되기엔 역부족이었다.
좀 더 촘촘한 복선고리들, 좀 더 복잡한 사건진행, 영화적 장치 같은 걸로 충분히 더 재미있게, 더 잘 만들 수 있었을 거 같은데 밋밋해져 버려서 좀 안타깝다.
게다가 그 결말을 드러낼 때 여러명의 주인공을 겹쳐 보여주는 것은 좀... 깬다싶지 않은가.

그렇지만 나름대로 괜찮더구만 뭘.
조니 뎁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즐거움의 50, 아니 70%는 먹고 들어간다. (이것 봐라. 주인공 땜에 너그러워지고 있다니.)
그의 오버하지 않는 자연스러움, 그러면서도 인상적인 연기, 최고.♡(심한 편애...ㅡㅡ;)

What Planet Are You From?

You Are From the Sun

Of all your friends, you're the shining star. You're dramatic - loving attention and the spotlight. You're a totally entertainer and the life of the party. Watch out! The Sun can be stubborn, demanding, and flirty. Overall, you're a great leader and great friend. The very best!

http://www.blogthings.com/planetquiz.html
기분은 좋다만 좀 아닌거 같은데;;;
솔직하게 답했는데;;;
그런데 태양은 행성이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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