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장면#1

네모나고 건조한 사무실 안에서, 그곳에서의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해야만 한다.
그 곳에서의 시간의 흐름에 대해 서서히 잊어가고 있는 것에 화가 난다. 해먹에 누워서 지켜보았던, 부드럽게 흘러가는 구름과도 같이, 시간은 적당히 지루하게, 적당한 아쉬움을 남기며 평화롭게 고요하게 흘렀었다. 하지만 나는 역시 망각의 동물이라 이제 강렬한 그곳에서의 기억도 머리속에는 장면, 장면으로 편집하여 새겨가고 있는 듯 하다. 너무 억울해서 화가 날 정도이지만, 결국에는 강렬한 사진 한장을 손에 얻는 것이 모든 여행자들의 숙원이 아닐까.

# 야광하늘빛 우주를 떠도는 거북이
엘니도 투어A의 끝에서 두번째 사이트였던 것 같다. 벌써 그곳의 이름을 잊어버렸다. 이름이 뭐 그리 중요하겠나.
전날 투어C도 함께 갔었던 프랑스 커플중 여자애가 귀여운 목소리로 바로 이곳에서 바다거북이를 볼수 있다고 들었다고 얘기한다. 호~ 나는 처음에는 사랑스런 물고기들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그 말에 열광하는 걸 보니 괜히 봐야겠다는 오기가 생기는 거다. 친절한 가이드는 If you are lucky라는 단서를 단다.(미안하게도 이 잘생긴 가이드의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영어 이름이었다.) 배에 닿을 듯 내 몸 바로 아래서 활동하는 산호와 물고기들을 보았던 어제와는 달리 이곳은 수심이 깊고, 그럼에도 투명한 바닷물을 지나 체감상 50미터는 되어보이는 저 아래 바닥의 물고기들까지 훤히 보인다.
바다속의 그 느낌을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일단 팔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마치 뱃속의 태아처럼 중력에서 자유로운 상태가 되면 지상의 모든 소리가 차단된다. (가끔 알수없는 작은 띡띡 소리가 들릴 뿐이다.) 바닥에는 돌인듯 누워있지만 발을 딛고 서면 황급히 표면의 벌린 입을 닫는 이름모를 산호들로 꽉 매워져있다. 그 틈마다 마치 유혹하듯 춤추는, 마치 세차할때쓰는 막대 걸레의 텍스처처럼 보이는 물풀들이 있고, 그 속에는 어김없이 호기심 많은 물고기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 대부분이 희거나, 노랗거나,  둥글고 납작하고 손바닥에서 팔꿈치까지 정도되는 크기의 것들이다. 그 중에 가장 자주 보았던 것이 아마도 흰색에 꼬리 부분만 검은 손바닥 크기 정도의 물고기인데, 얘네들은 항상 사람이 다가가면 눈을 똑바로 마주치면서 가까이 다가왔다가 쪼르르 산호속으로 돌아간다. 어떤 때는 뭔가 소중한 것을 숨겨두고 오지 말라고 위협하는 듯 보이기도 하고, 어떤때는 그냥 "뭐 저런 물고기가 다 있나"하면서 호기심때문에 접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니모를 찾아서때문에 누구나 다 니모라고 부르는 그 물고기는 항상 똑같은 희거나 주황색인 물풀 안에 있는데 마치 제몸을 마구 부벼대며 장난을 치고 있는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역시나 호기심이 대단하여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지나치지 않고, 쪼륵 달려오고는, 다시 쪼륵 돌아가서 다시 장난을 친다.  아래를 보느라 곁에 집중하지 않는 사이에 어느새 바짝 얼굴 옆에 다가와 있는, 주둥이가 길고, 마치 팔뚝 길이만한 은빛 갈치처럼 생긴 물고기도 있다. 그냥 가만히 힘을 빼고 물고기 주민들이 하는 행태를 구경하다 보면(내가 본 바에 의하면 거의 대부분 나처럼 그냥 평화롭고도 부산스럽게 왔다 갔다 하거나, 코를 부딪힐 듯 귀엽게 서로를 위협하는 일이다.) 시간가는 걸 잊게 되고 문득 다른 사람들이 생각난다. 고개를 들면 같이 온 투어 일행들의 스노클링 호스만 수면에 떠서 어디에 누군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그 가이드는 마치 내가 물밖에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급히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한다. 헤엄쳐서 안으로 들어가 그가 손으로 가르키는 쪽을 봐도 뭘 보라는 건지 모르겠다. 다시 나와 뭐냐고 물어보았고, 그는 Sea turtle이라고 말해준다. 그제서야 막 바닥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헤엄쳐 가는 거북이를 발견한다. 밑도 끝도 없이 열심히 헤엄처 그 놈을 따라 간다. 어느 순간 수심은 더욱 깊어져 바닥에 가득하던 산호들이 보이지 않게 되고, 시야는 온통 형광하늘색 딱 그 빛깔로 꽉 채워져 있다. 대양의 바닥은 더이상 보이지 않고, 앞뒤 양옆, 위 아래 모두 형광하늘색 밖에 없다. 그리고 마치 구름사이로 햇살이 산란하듯 온 바다속 안에 직선으로 산란하며 떨어지는 햇살들 밖에. 그리고 저 앞에 거북이가 떠간다. 어찌 그 순간을 잊을 수 있을까. 그건 마치 유년기때부터 꿈꾸던, 우주 속에 홀로 떠서 세상과 단절된 채 자유가 된 그런 순간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경험이었다. 그 우주가 암흑 대신 아름다운 푸른 색깔이고, 별들 대신 햇살이 있고, 그리고 온세상에 거북이와 나밖에 없는 듯 생각되는 순간. 한동한 그렇게 있다가 순간 겁이 난다. 우주 미아가 되는 건 아닐까. 그리고 바로 수면위로 고개를 들면, 저 멀리서 가이드가 나를 발견하고 손짓한다. 돌아가자고. 편안한 안도감이 들면서 그리고 이미 멀리 사라져버린 거북이를 아쉬워 하면서, 유유히 헤엄쳐 배로 돌아가, 떨어지는 물기를 햇살에 털어내며 활짝 웃으며 얘기하는 거다. 환상적이었다고.
항상 그래왔던 거 같다. 문명과 멀어져 대지, 자연, 우주와 같은 날 것들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모험을 항상 꿈꾸어 왔다. 모래 속에 은둔하며 청의 전사라 불리는 사하라 사막의 베두인족들에 대한 동경때문에 그렇게 사막에 가고 싶어 안달했었고, 마침내 붉은 사막의 울룰루까지 가고야 말지 않았던가. 고등학교때인가. 정글속에서 맨발로 길을 찾아내고, 오직 눈빛만으로 그 안의 생명과 소통하는 열대인들에 대한 묘사로 일기를 쓴 적이 있는데, 그때의 간절함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마티스와 고갱의 그림들처럼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그러한 것들데 대한 꿈이 항상 꿈틀대고 있다. 그리하여 마치 가슴속의 한을 풀어내듯, 나는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끈질기게 내가 추구했던 것들에 대한 숙원을 풀어가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건 내 뼈속 깊은 곳, 내 정신의 기저에 자리잡고 있는 문명과 도시에 대한 향수이다. 문명의 끈을 놓게 되는 그 결정적인 순간에 나는 항상 두려움때문에 가로 막힌다. 나고 자란 태생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KTX가 도시에 들어설 때 오랜 집에 도착한 것처럼 안도하는 스스로를 이상하게 느꼈었다. 언제나 도시를 떠나겠다고 떠들어대고 다니지만, 밤 거리를 걸을때면 어김없이 언제나 이도시를 사랑하는 것같다고 느끼게 되는거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열대 정글과 산호 바다속에서도 나는 안전하게 나를 문명세계로 데려다 줄 배를 찾고 있었다. 마치 양쪽 다 쫓으려는 욕심쟁이처럼 항상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엘니도 베이큇군도의 하늘빛 바다속에서의 경험은 마치 내 마음속의 오랜 대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아직도 여전히 나는 갈등중이다. 갈등의 시간은 지루하지만, 켜켜이 싸인 고민의 시간이 언젠가는 반드시 후회를 남기지 않는 현명한 결정으로 보답받을 것임을 믿는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부디 끊임없이 이 탐험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누구에겐지도 모를 기원을 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