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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05 라따뚜이 -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만화 속 남자 주인공
  2. 2009.04.03 오마이갓 리암
  3. 2009.04.01 그냥 일기
  4. 2009.03.21 Batman begins
  5. 2009.03.15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6. 2009.02.21 미디어가 존재하지 않는 일상
  7. 2008.09.27 최근
  8. 2008.05.10 그냥 단상
  9. 2008.05.10 오랜만에 "우리"와 만났다.
  10. 2008.02.24 2년간 사귄 친구의 죽음 - 숭례문 전소
  11. 2008.02.24 마이러브
  12. 2007.11.19 겨울
  13. 2007.10.28 결혼에 대하여
  14. 2007.08.16 죽음 1
  15. 2007.07.25 2007 독서편력
  16. 2007.07.18 최근, 정리되지 않은 편력
  17. 2007.05.13 창가의 고양이 2
  18. 2007.05.01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19. 2007.04.01 2003년도일까.
  20. 2007.03.25 [스크랩]"진짜 어마어마 하네"
  21. 2007.03.25 멋진 그림책 블로그
  22. 2007.03.17 향수 1
  23. 2007.02.25 근황.
  24. 2007.02.10 오래간만의 꿈에.
  25. 2006.07.31 캐리비안의 해적 그리고 "게드전기-어스시의 전설" 2
  26. 2006.07.29 파워퍼프캣 강냥이
  27. 2006.05.31 부산에서, 마지막 잔상
  28. 2006.05.29 계정이사 및 태터툴즈 업그레이드
  29. 2006.05.28 현대판 노예 할아버지 "이흥규"씨 (뒤늦은 SOS를 시청하고)
  30. 2005.11.09 최고령 거북이 175회 생일

라따뚜이 -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만화 속 남자 주인공

내 평생!! 이렇게 귀여운 만화 속 남자 주인공은 처음이야.
"귀엽다"가 쥐새끼들한테 쓰는 "귀엽다"라는 표현이 아니라,
괜찮다, 멋있다, 매력적이다, 섹시하다같은 온갖 표현들을 다 섞어서 쓸 때 쓰는 그 귀엽다라는 뜻이다.
아우 바짝 마른 몸매하며, 큰 키하며, 손을 쥐면 유난히 커보이는 주먹하며, 그 멍청한 표정하며, 푸석거리는 머리하며, 맨날 똑같은 빨간 스니커즈하며, 큰 코하며, 늘어진 둥근 눈하며, 주근깨하며 뭐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아 진짜 만화 주인공에 이렇게 꽂혀보긴 첨이야. 첨엔 쥐 귀여워서 깔깔대다가 얘가 나오고 부터는 얘밖에 안보이드라. 크크크크하하허라마ㅣ
내가 영화 캡처질하기는 진짜 이번이 처음.

오랜만에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와, 실사보다 볼 것이 많다.
캐릭터들은 진짜 배우들보다 표정연기가 압권이고. 얘 캡처하느라 여러번 돌려봐도 첨 볼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계속 보인다. 손짓, 몸놀림, 눈알 움직임등등. 현실보다 리얼하다. 이전에는 3d가 얼마나 실사처럼 보이느라가 관건이었으나 이제는 그럴 단계는 지난 것 같음. 사람같이 안 생긴 캐릭터를 등장시켜놓고도 백프로 몰입하게 만들고 있으니.

사랑스러운 엉거주춤 포즈

아 이표정 너무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에 빠졌는데 오 섹시

긴 팔도 섹시

아 귀여워

아 저 실루엣. 마른 몸매 매니아가 되는 거 같애

잠 자고 일어난 귀여운 모습

이 것은 진지한 표정이다.

나름 생쥐에게 훈수하는 중

오 가슴을 풀어헤진 섹시한 포즈 ㅋㅋㅋ크하나ㅓ날

화려, 발랄한 포즈들의 향연

키스할때 발 올리는 거 너무 귀엽잔아!!!!

오마이갓 리암

liamgallagher

  1. WhiteI just wanna thank everybody that was at last nights gig in Seoul Korea. It reminded me of the 90's, we must do it all again in July... LG
  2. WhiteI've got diarrhea in Korea! LG



오마이갓 리암!! 싸랑해싸랭해쌀랑!
싸랑해요 LG
어제 미친 관객들을 보고나니 진짜 '나만의 오아시스'가 아닌 걸 뼈저리게 느낌. 진짜.. 미쳤어 ㅡㅡ;

이 밴드에 미쳐 날뛰는 사람이 진짜 깔려 죽을만큼 많은데 왜 나는 10년을 넘도록 친구를 만난 적이 없을까.

당신이 말하는 90년대를 먼발치에서 항상 공연 실황이나 뒤적거리고, 투어 일기나 파고, 인터넷 온갖 잡다한 사진들이나 뒤지면서 보냈던지라(그것도 전화 모뎀 인터넷으로!!)

진짜 여기 한국, 서울, 지금 현재!!의 공연을 2번 보고 난 이후 감회는 머랄까, 딱히 머라 표현할 길이 없다.

"아, 당신들 정말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나의 우상이 맞구나" 정도?

죽을때까지 사랑하겠어.

그냥 일기

오늘, 아니 벌써 새벽 3시가 다 되어가니, 어저께구나, 암튼간에 아까 전에,
퇴근해서 내일 아기다리 고기다리 오아시스 콘서트에 갈 생각에 이것저것 인터넷을 뒤져보다가
(과감히 휴가를 냈다. 그리고 옆에 앉은 직장동료가 - 아 휴가를 내버리면 어떡해 - 라고 말했다. 쳇, 상사도 아니면서. 나는 내게 제일 중요한 일을 하면서 살거다. 회사에 제일 중요한 일이 아니라)
리암이 자기 옷브랜드 홍보용으로 (아, 무슨 10대 아이돌같애. 40대 락 아저씨 주제에 흐흐흐흐하하으흐허허허크크허ㅓㅇㅇㅇ)
트위터라는 소셜 네트워킹 툴을 쓰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단숨에 나도 가입했는데, 서버가 외국에 있는지라 무진장 느려터졌지만 꽤 맘에 드는 시스템이다. 단순하고 내가 썼던 텍스트는 - 그게 뭐 따른 친구에게 하는 말이든지 뭐든 간에 내가 쓴 건 다 - 한 눈에 볼수가 있고, 잡다한 기능도 없는 거 같고, rss지원한다. 블로그와 비슷하나, 제일 다른게 한 포스트당 글자 수 제한이 있다. 어, 그러고보니 이런 비슷한 시스템이 국내 어디선가 본거 같은데 알고보니 미투미라는 사이트가 있었던 거다. 그때도 진짜 맘에 들어하면서 앞으로 자주! 이러면서 북마크 했었는데, 한번도 접속해본 일이 없다.
그 원인을 어쩌다 불현듯 깨닫게 되었는데, 나는 뭔가를 쓰려고 할때 주저리 주저리 배경 설명 싹 다 하고,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지 타당한 근거를 대려고 노력하는데다, 나름 짜임새 및 구조를 설정하려고 무의식중에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거다. 아 그래서 한번 쓰기 시작하면 몇자 정도론 택도 없다. 뭐든 한 문장에 다 함축해버릴 정도로 스마트하지 못하다. 근데 서론만 흘리기엔 내가 너무 갑갑해해.

암튼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렇담 뭐 어쩔수가 없다.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생각나는대로 자세하고도 상세하게 적는 수밖에.

일상을 간단히? 기록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면을 중심으로)

수영을 배우고 있다. - 이건 힘든 면도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그리고 25M짜리 YWCA 풀을 한번에 헤엄치기에는 내 허파가 너무 약해. 근데 요즘 제일 좋아하는 일이 된 이유는 먼가 희망이 보인다. 내가 이 기술을 얼마나 멋지게 써먹을 수 있을지. 아니 그것보다도 내가 이 기술때문에 얼마나 더 멋지게 "지구"를 즐길 수 있을 지를 생각하면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이 오를 정도.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단순히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즐겨왔던 몇 안가지 일이기 때문인거 같다. 그건 바로 물속에서 놀기.

기타를 배우고 싶어졌어. -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음악적 재능은 털끝만큼도 없는 거 같고 게다가 뭐 열정도 그렇게 없는 거 같고.- 어릴때 피아노를 배울때 쳤던 하농 그걸 쫌 많이 싫어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걸 더 열심히 했더라면 내가 원하는 정도의 피아노 감각을 좀 더 쉽게 익혔을 수 있었을 텐데싶음 - 근데 흘끔거리기를 너무 좋아해. 바이올린도 배우고 싶고. 그걸 들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나 할까. 반면에 어쿠스틱 기타를 들으면 맘이 너무 편해져. 마치 명상을 하듯이. 제이슨님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기타를 배워야 할 거 같다. 명상이 필요하다. 요즘은 너무 고집과 아집에 뭉쳐서는 내맘대로 되지 않으면 화나 짜증부터 내는 경향이 있다. - 그건 물론 직장때문에 그런거고 그리고 오직 직장에서만 그렇게 한다. 근데 사실은 이게 내 본성인 거 같애.-

마이 사랑 리틀 키티는 몸을 말고 무릎위에서 잔다. 사랑해사랑해 사랑해. 내 새 침대시트를 온통 털로 뒤덮혀 놓아도 - 아 바부팅이 - 요새는 싸우기도 한다. 내가 너무 늦게 퇴근하고 있어. 그리고 수영땜에 너무 일찍 집을 나가. 그래서 얘를 볼 시간이 많이 없다. 어제는 나름 놀아준다고 놀아준건데, 삐져서는 잠자리에 들때 평상시처럼 팔베게 하는 대신에 내 발치에서 몸을 웅크리고 누웠다. 아 섭섭하더라. 그래도 결국에는 내 등뒤에 붙어서 잠. ㅋㅋㅋㅋㅋㅋ흐흐흐헐헐

내일은 오아시스 콘서트를 보러 갈거다. 사진이나 영상을 본지가 몇년은 넘은거 같은데 오늘 쫌 봤더니, 완전 할아버지가 된거 같애. 프리티 그린 그건 뭐니 리암? 거기서 나오는 영상들만 다 문제야. 널 쫌 이쁘게 찍어서 널어줘. 공연을 거의 한달에 한번씩 가면서 느끼는 게 이건 뭐 순간, 아니 몇시간동안만 지속되는 환각제같다는 생각은 드는데 내 전체가 refresh가 될 정도로 HAPPY해진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너무너무 HAPPY해졌다가 끝난 후 2-3시간 정도면 같은 일상이야. 근데 그럴지라도 refresh된다는 그 경험자체가 너무 너무 너무 괜찮은거다. 그래서 말인데, 거의 한달에 한번은 공연을 다녀주는게 정신건강에도 좋을 거 같애. 지금은 Life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QUT에서 처음 학기를 시작할때 온갖 종류의 오리엔테이션이 많은데(강제는 아니고 자율) 나는 경험삼아 그 중 몇개를 참석했었다. - 간식이랑 선물도 주니 손해볼 것이 없다.- 거기서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너의 Life를 가져라"라는 정도의 내용이었다. 하루 24시간을 파이그래프로 그려놓고 수업 듣는시간, 과제하는 시간, 파트타임 하는 시간, 파티하는 시간, 그냥 쉬는 시간 등등의 비율을 네가 생각하는 한에서 적절히 유지하라는 그런 내용. 아무것도 아예 없애버리려하거나, 어떤걸 백프로 집중하겠다고 절대 생각하지 말고 항상 일정 비율을 유지하려고만 해라.. 대학교에 왔으니 공부에 신경써라, 학점관리 잘해라(아 물론 그런 비슷한 내용도 있긴 있었다.) 와 같은 advice가 아니라 너의 life를 가져라 그게 주제였음. 대학교 학기 시작 오리엔테이션에 이런 내용을 진지하게 조언한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 내용 자체도 너무 괜찮지 않아? 암튼 그래서 말인데 나는 나만의 Life를 갖기로 했다. 3년 넘게 나에게 회사 Life만 있었던 거 같다. 아 근데 웃긴건 그렇다할 성과도 업적도 없고, 명성이나 인정도 없어. 시간상으로 나는 회사에 올인했으면서 항상 맘만은 겉돌아. 근데 어차피 맘이 겉돌거, (절대 맘까지 올인하거나 그럴수는 없다. 불가능) 내 시간 할당량도 적정 비율을 유지하자. 강제사항이 커서 그럴수 없다치면 반대급부로 내 고유 라이프에 할당되는 시간도 같이 한번 늘려보자는 거지. happy한 경험들을 수집하고, 더 많이 반복하자. 그러려면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데.. 잠을 줄여야 하나.. 잠을 줄일수 있을까..

회사생활은 점점 고달파 진다. 점점 더 단순 무식 관리 행정업무가 많아진다. 기술력 향상이나 새로운 영역을 접해볼 수 있는 기회는 전혀 없다. 그렇다고 관리자적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을 만한 환경이 아니다. - 내 성격 자체도 그건 아닌거 같다. 뭐랄까 리더쉽이 없달까. - 내 밑에 있는 사람들과는 그냥 친구처럼 들이대고 스스럼 없이 장난스럽게 지내버리거나, 아님 왈가왈부 싸우거나 둘 중 하나다. 아 물론 내 스스로가 컨트롤이 되지 않는데 어떻게 다른 인격적 존재를 컨트롤 할수가 있겠니. 내가 나름 의도를 가지고 한 배를 탄 사람들을 긍정적 방향으로 조직화하려고 한들, 나와 뜻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리더?( 아 리더는 좀 낯간지럽고 선구자?? 암튼 좀 나서서 추진하는 사람)로 보아주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한 걸. 근데 이건 내 스스로가 선택할 건지도 모른다. 첨부터 거들먹거리고 싶지 않았어. 내 외면적 성격 자체가 털털하고 될대로 되라이니 더욱. 이 문제에 대해선 좀 더 생각해보자.

그리고 이건 사회생활에 관해서 또 다른 주제인데,
직장에 친구를 만드는 게 과연 괜찮은 생각일까.
친구라고 해도 동년배나 동성에 국한해서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고.
연령, 성별, 직급 상관없이 항상 같은편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유대감이 있는 사람. 개인적인 시시콜콜 대소사까지 드러낼 수 있는 사람. 회사에서의 내 공식적인 입장 뿐만 아니라 그 밑에 숨겨져 있는 비공석적인 감정이나 의도나 생각까지 다 드러낼 수 있는 사람. 항상 돕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

글쎄, 이전에 썼던 내용은 더 발전시키기 위해 다른 post로 옮기고,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건 과장님한테 시시콜콜 온갖 얘기를 다 하고 있는 나를 깨닫고였다.
나도 깨닫지 못한 사이에 친밀하지 않은 사람한테는 잘 하지도 않는 다른 사람 뒷담화도 하고 있고,
그냥 멀리서 만나더라도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미소짓고 있다. 아 이런. 이건 진짜 "친구"랑 똑같은 거다.
쿨하고 스트레이트하고 민감하지 않는 그 성격을 참 좋아한다. 상하고하, 지위, 성별 막론하고 한결같은 태도도 그렇고.
사람을 좋아하는데는 참 불가사의한 면이 있다.

Batman begins

오.. 크리스토퍼 놀란.
이 나이에 슈퍼 히어로 물에 열광하게 만들다니.


왜 다크 나잇 보기전에 배트맨 비긴스부터 볼 생각을 안했을까.

영화의 비주얼과 후광, 음악, 까리하지 않은 게 없지만 스토리도 예술이다.

이 만화 자체의 상상력과 설정에 박수를.

레이첼 역에 케이티 홈즈가 나오고 있는 것에 놀랐음. 다크 나잇에는 다른 여자였잖아.

악역에 킬리언 머피를 만나다니 큰 수확이다. 진짜 잘 어울림. ㅋㅋㅋ
나올 때마다 그 열대바다 같은 눈알을 뚫어지게 바라보게 만든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이 스토리를 소설로 먼저 읽었다면 얼마나 멋졌을까부터 생각했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밖에 읽어 본적이 없는데, 그다지 감흥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이렇게 매력적인 스토리라면, 이 작가에 대한 나의 마인드가 좀 달라졌을 거 같다.

늙게 태어나서 점점 젊어지고, 어린 아기가 되어 생을 마감한다는 아주 아주 특이한 케이스의 삶을 산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내내 생각하게 하는 것은 우리네 삶이자 그리고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한다.

누구나 태어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번개에 7번 맞았다는 할아버지, 피그미족 아저씨, 피아노를 가르쳐 준 할머니, 예인선 선장님...)
삶의 경이로운 경험들을 시작하고, 사랑을 하고,
(색시집에 놀러가고, 술을 마시고, 그리고.. 데이지를 만나고, 호텔에서 만난 부인)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들을 무겁도록 사랑한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을 받아들인다.

물론 이야기는 환상소설이라, 비현실적이다.
인생이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인생사는 아주 쉽게 전쟁에 나가기를 결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파리에 가서 죽치고 있거나 할 수가 없다. 게다가 누구나 큰 단추공장을 운영했던 아버지를 만나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거꾸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곧 죽을 줄로만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그게 가능한거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해 버릴수 없는 이유는, 따지고 보면 벤자민 버튼이나 우리네 일반적인 케이스나 전혀 다를게 없다는 것이다.

그의 외모가 아무리 젊어진 들, 어차피 죽음을 향해 흐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줄 알고 살아갔다지만, 우리도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걷고 있지 않는가.

(또 다른 면에서도 그의 케이스가 일반적 인생케이스와 달라보이진 않는데, 왜냐면 어린 아이는 여러모로 보다 늙은 노인과 비슷한데가 있다.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육체적,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등등, 데이지가 말한 것처럼 - Daisy: We all end up in diapers. )

나이와 시간의 제약과, 외모와, 그에 걸맞는 품위들이 뭐에 그리 중요한걸까.
우리 모두는 개인차가 있지만 모두 정해진 시간을 할당받았고,
그 유한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은 개인적 선택의 문제이다.

게다가 벤자민보다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그가 시간이 갈수록 젊고 건강한 육체를 선사받는 반면에,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소모되는 육체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내 몸 어디가가 고장나서 쓸 수 없게 되기 전에 더욱더 필사적으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가능한한 많이, 더욱 풍성하게 여행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사랑을 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노여워해야 한다.

Memorable quotes for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2008)

[from trailer]
Daisy: You're so young.
Benjamin Button: Only on the outside.

Benjamin Button: I was thinking how nothing lasts, and what a shame that is.
Daisy: Some things last.

Benjamin Button: Along the way you bump into people who make a dent on your life.
Some people get struck by lightning.
Some are born to sit by a river.
Some have an ear for music.
Some are artists.
Some swim the English Channel.
Some know buttons.
Some know Shakespeare.
Some are mothers.
And some people can dance.


Daisy: Would you still love me if I were old and saggy?
Benjamin Button: Would you still love ME if I were young and had acne? When I'm afraid of what's under the bed? Or if I end up wetting the bed?

Benjamin Button: It's a funny thing about comin' home. Looks the same, smells the same, feels the same. You'll realize what's changed is you.

Daisy: Goodnight Benjamin.
Benjamin Button: Goodnight Daisy.

Benjamin Button: [Voice over; letter to his daughter] For what it's worth: it's never too late or, in my case, too early to be whoever you want to be. There's no time limit, stop whenever you want. You can change or stay the same, there are no rules to this thing. We can make the best or the worst of it. I hope you make the best of it. And I hope you see things that startle you. I hope you feel things you never felt before. I hope you meet people with a different point of view. I hope you live a life you're proud of. If you find that you're not, I hope you have the strength to start all over again.

Mrs. Maple: Benjamin, we're meant to lose the people we love. How else would we know how important they are to us?

Captain Mike: You can be as mad as a mad dog at the way things went. You could swear, curse the fates, but when it comes to the end, you have to let go.

Benjamin Button: Some nights, I'd have to sleep alone. I didn't mind, I would listen to the house breathin'. All those people sleepin'. I felt... safe.

[last lines]
Benjamin Button: Some people, were born to sit by a river. Some get struck by lightning. Some have an ear for music. Some are artists. Some swim. Some know buttons. Some know Shakespeare. Some are mothers. And some people, dance.

Daisy: I promise you, I'll never lose myself to self-pity again.
Benjamin Button: [while the day begins] And I think, right there and then, she realized none of us is perfect forever.

Daisy: Have you slept with a woman before?
Benjamin Button: Never on a Sunday.

Daisy: We all end up in diapers.

Ngunda Oti: You'll see little man, plenty of times you be alone. You different like us, it's gonna be that way. But I tell you a little secret I find out. We know we alone. Fat people, skinny people, tall people, white people... they just as alone as us... but they scared shitless.
http://www.imdb.com/title/tt0421715/quotes

미디어가 존재하지 않는 일상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요즘 접하고 있는 거의 모든 뉴스의 출처는 지하철 공짜신문 메트로였었는데,
그나마도 요즘 밤낮으로 매달려있는 트와일라잇때문에 밀려났다.
(지하철안에서 신문을 보는 대신에 소설책을 잡고 있다.)
요즘은 뉴스라는 것을 거의 접하지 않는다.
최근 방영하는 드라마도, 인기있는 컨셉의 티비 커머셜도 잘 모르겠고,
연예인이라고는 가끔 IPTV에서 켜보는 오락프로그램의 출연자들밖에 잘 모르겠다.
용산참사도 밤늦게 명동에서 버스 기다리다가 차도를 걸으며 시위하는 시위자들 때문에 알게되었다.
경제가 땅을 쳤어, 어느 대기업은 직원들 급여를 체불했어등등의 소식은 모두 직장 동료를 통해서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나마 이 소식들도 한 두달은 넘은 것들 같다.)
밥벌이에 필요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이 거의 없을 뿐더러 있다하더라도 강냉이와 눈싸움 정도랄까.
친구들 문자에 간간히 답장하고, 가족들과 전화 통화하는 것이 있구나.

신작 개봉 영화를 줄줄이 꿰고 있던 마지막이 한 3-4년전이고,
지금은 개봉당시 못보고 놓쳤던 영화들 재개봉을 기다리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내일은 다크나이트를 보러 가려고 생각중이고, 다음주 목요일은 트와일라잇을 예매했다.

뭐땜에 이러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직장생활 하는 것은 일단 인정하고,
그 외에 시간도 집안일을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내 머리속은 뭘로 차있는 걸까.
사색과 고민과 사유와 같은 버릇들은 일치감찌 잊어버린거 같고,
그에따라 내 의식의 흐름을 정하는 언어감각도 잃어버려서 단어와 표현같은 것들이 이제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효용성과 실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생리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걸까,
불편하고 불필요한 수식일 지 모르겠지만, 아름답고 장엄하고 예쁘고 치장스러운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감각들이 모두 없어져 버린 것만 같다.

"쓸데없는 것들"에 대한 의미 부여가 삶에 낭만과 재미를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쓸데 없는 것들. "돈, 경제가치, 시간절약"에 반대되는 것들.
만나고 대화하고 사랑하고 교감하고 읽고 느끼고 돌아다니고 사유하고 생각하고 슬퍼하고 꾸미고
열광하고 소모하는 것들...

암튼 그래도 제이슨 므라즈, 트래비스, 내 일생의 영웅 오아시스의 공연이 잡혀있고,
아직도 읽어야할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쌓여있으니 기쁘다. 그것들이 모두 끝나면?
지금은 모르겠다. 무슨 재미로 살아가야 할지.

최근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생활이 생계가 되어 가는 느낌이다.
내게서 찐득찐득한 감정의 울렁임같은게 없어진 것은 딱 2005년을 기점으로 하면서인 것 같고,
그때는 내가 사회인이 된 그 시점과 일치한다.

실용적이지 못한 몽상의 나래들과, 어디서 오는지 알수도 없는 이상하고도 초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상상들,
자연과 성공과 여행과 사람들에 대한 끝도 없는 동경들. 세상에 대한 호기심때문에 항상 상기되어 있었던 일상.
그건 성장하고 있는 자, 혹은 생계를 책임지지 않는 자만의 특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더 이상 리엄 갤리거를 동경하지 않고,
아무 이유없이 아프리카에 가야'만'한다고 쌩떼를 써 스스로를 부대끼게 하는 일이 없다.
하지만 조금 더 편안하고 무덤덤하게 새로운 경험들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고,
'갖고싶어, 이루고 싶어"라는 욕망들보다는, 향유하고, 체험하고 느끼는데 집중할 줄 알게 되었다.

어느 면에서는 나이들어가는 것이 무지하게 가슴 쓰린 일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때문에 아직은 한살 한살 먹는게 재미있다.

그리고 10여년간의 청소년기를 끝내면서 필이 꽂히는 것들도 취향이 약간씩 달라졌다.

녹진녹진한 환각적 우울을 플레이하던 MP3는, 착하고 긍정적 슈거보이 제이슨 므라즈를 거의 매일같이 플레이하고.




샘물처럼 샘솟는 뎁에대한 무한한 애정은 여전하지만,
알의 얼굴, 눈빛은 그저 말을 하지 않아도, 대사 한 줄 없어도 그냥 다 '그게 뭔지' 이해할 것 만 같다.
뒤늦게 도니 브래스코를 보여준 myLGtv에게 감사.

그리고, 나는 박건형이라는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상상플러스에서 처음 봤다.
이것도 myLGtv에서.크크크 (집에와서 밥먹으면서 매일 한편씩 틀어놓는다.)
아 진짜 이렇게 웃는 거 하며, 길다린 팔다리, 성격이 맘에 듬.

그냥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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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무런 이무없이 코끝이 시큰해지면서 금방이라도 울음을 쏟아버릴 것 같은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있다.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울음이 헤퍼진 케이스다.
인생살이의 한恨같은 것을 알아버렸다고나 할까.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존재하지만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기때문에 꾹 참아내왔던 그런 불만덩어리들이
얼토당토하지 않은 어떤 매개로 인해 - 예를 들면 마포구 상암동의 DMC단지가 너무 서울도심답지 않게 횡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라던가 하는(이 순간 실제로 울것 같았음 ㅡㅡ;;;;) - 폭발 직전까지 가는 순간들이 있다.

딱 그 타이밍에 목을 놓아 엉엉 울수만 있다면(그 타이밍을 5분이라도 놓치면 안된다),
그리고 더 욕심내어 그렇게 미친듯이 울어버려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옆에 있어서 등을 토닥토닥해준다면,
그 덩어리들이 시원하게 해소되고, 카타르시스를 느낄수 있을 것만 같지만,
항상 그 상황이 너무 얼토당토하지 않은 상황이기때문에 절대로 그럴수가 없다.
야외 테이블에서 언니들이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하고 있는 한가운데 있다거나, 지하철 안에 앉아 있다거나 그런거 말이다.

그냥 코끝이 더 시큰시큰해지지 않도록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한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스트레스라도 다 부셔버릴 수 있는 강한 나로 변신할 수 있는 그런 생각들을 애써 하면서말이다.
- 예를 들면, '어서 빨리 마포 준공검사를 끝내고 오늘은 꼭 빨리 퇴근해야지'하는 것과 같은 생각들. 크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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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는 주위사람들에게 너무도 많이 하고 글로도 너무 많이 썼지만 나에게는 절대 지겨워지지 않는 23세 짧은 여행중의 이야기다. 별다른 에피소드나 사건들이라고는 없는, 그냥 잔잔하고 무덤덤한 스틸사진들과 같은 기억의 조합들이 바로 그 여행이었지만, 절대로 잊어버릴 수도 없고 너무도 자주 자주 생각이 난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기억의 조각들은 언제나 여행 목적지에서 보냈던 풍요롭고 짜릿한 순간들이 아니라,
길고, 지루하고, 피곤하기 짝이 없는, 대륙을 쉼없이 내달리는 장거리 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던 그 순간들이다.

대륙은 국토의 1%?? 아니, 0.1%를 제외하면 완전한 깡시골, 오지와도 다름없는 그런 나라였다.
나름 도시라고 불리웠던 체류지를 떠나 길을 나서자 계속해서 이어진 길은 1차선도로였다. 그나마 사막으로 진입할때는 포장이 없는 길도 나오곤 했다.
버스는 간혹 작은 도시들에 정차하여 승객 1-2명을 내리거나 태우거나 하기도 하고, 화물1-2개를 올리고 내리기도 했다. 해안에서 사막으로 들어가는 루트에 있는 모든 장거리 버스 터미널은, 작은 마을 한귀퉁이에 있는 매점이거나 동구밖 큰 나무이거나 그랬다. 마치 마을버스라도 되는것처럼. 26시간을 달려야 끝나는 긴 노선이라는 점이 마을버스와는 다른 점이겠지.

마을의 입구에서 마을의 끝까지 훤히 보이는 한가롭고 예쁜 동네에서 버스가 잠시 정차했다.
바로 옆에는 아이들을 키우는 수도원인 듯, 아이들이 놀고있는 놀이터가 보이고 수도원 정문앞에 백인 수녀 한명과 애보리지니 아줌마 한명과 아이 둘이 섰다.
아줌마와 수녀가 볼에 키스하고 오랜 포옹을 나누고, 수녀가 마침내 버스에 오른다. 아이 둘이 울상을 한채로 아줌마와 함께 오래오래동안 손을 흔든다. 버스는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마을을 떠났다.
지구상 누군가의 떠남과 도착함, 헤어짐의 아쉬움과 따뜻한 포옹들을 마치 내것이었던 것처럼 아련하게 기억할 수 있는 건 여행중이라는 특수한 상황때문일 것이다.

또다른 헤어짐은 Mt.Isa 이전의 마을이었던 것 같다.
마르고 키가 큰 그 사람은 반바지에 아무렇게나 헝크러진 더벅머리를 하고 있었지만 주름이 많이 팬 얼굴을 하고 있어 중년정도의 나이대로 보인다. 이분도 중학생정도로 보이는 큰아들, 작은아들로 보이는 아이 둘을 대동하고, 부인도 같이 있다.
버스가 터미널로 들어서자 나는 비몽사몽 잠에서 막 깨어나 내 차창 바로 밖으로 그들을 내다 본다.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내려다 보았고 아이들의 표정이 천천히 구겨지기 시작하더니 오만상을 쓰고 울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심하게 운다. 다 큰 아들들이.
아줌마는 아들들의 어깨에 팔을 둘러 토닥이고, 아저씨는 그들을 뒤로 하고 버스에 올랐다.
그도 소리내어 울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가 앉은 내 앞 좌석에 관심을 가졌지만 소리가 들리진 않는다.
하지만 그의 슬퍼진 표정이 내 눈앞에 또렷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는 오랫동안 차창밖을 쳐다보진 않았다. 잠시 눈길을 줄 뿐이다.
버스는 다시 달리기 시작하고, 인생의 고단함과 사랑하는 이들의 슬픔으로 다친 가슴도 같이 버스에 탄채 달리고, 그런 길들이 다시 또 반복되곤 하였다.

오랜만에 "우리"와 만났다.

20대를 꺾으면서 만난 좋은 사람들,
그들의 개성들, 캐릭터들, 그들의 지적임, 그들의 유머러스함, 그들의 사랑 이야기들, 그들의 인생들.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다, 다만 사랑하진 않는다.

20대를 꺾기전 만났던 사람들,
그들의 순박함, 그들의 어리숙함, 그들의 촌스러움, 그들의 거친 언어들, 그들의 고생스러움, 그들의 구질구질함.
제기럴제기럴 욕을 퍼부으면서 미워하지만, 사랑한다.

20대 초반에 내 사회성에 옷을 입히기 전처럼 "새로운" 사람들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그 옷을 고스란히, 가지런히 벗어놓고 유유히 걸어나올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는 용기와 실행력과 결단력을 갖추고 있다면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사랑하게 된다면 이전의 나와 달리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나의 모습은 그렇게 하고 있는, 그러면서도 조바심내지 않는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닌지말이야.

2년간 사귄 친구의 죽음 - 숭례문 전소

숭례문이 만 이년간의 시간동안 내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2006년 2월 첫 출근을 시작으로 거의 매일 보아왔다.
푸른하늘과 도심의 건물, 그리고 숭례문 주위의 푸른 잔디와 소풍하는 사람들의 풍경.
숨막히는 일상의 청량감이었던 거 같아.
교과서에서만 들었던 살짝들린 처마의 아름다움을 다시 배우기도 했고, 웅장하면서도 드러내놓고 뻐기거나 으시대지 않는 고결함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된 것 같기도 해.
성곽을 잃고 그냥 덩그마니 남겨진 '문'일뿐이라고 느꼈던 적도 분명 있었던 거 같은데,
나의 초년 사회생활의 배경이 되고, 그 생활이 힘겹고 지긋지긋하고 어떤 때는 깊은 절망과 괴로움의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도
퇴근 길의 숭례문은 말없이 조용히 나를 위로했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것 같아.

외근길에 테이크아웃 커피점 노상 테이블에 앉아서
저 문을 지켰을 창든 무사와 매일을 지나치는 달구지와 남자들, 동그란 보따리를 든 아낙들,
수원을 행차하는 정조대왕님을 남몰래 상상하기도 했었는데..
겨레의 상징이며, 600년 왕조의 보물, 우리의 얼이고 자존심이었겠지만,
나에겐 그저 잠시 일상을 잊게 해주곤 했던 친구같았던 거 같아.
"숭례문 전소"라는 뉴스타이틀에 몇년간 소리 소문없이, 큰 사건없이 조용하고 은근하게 사귀어온 과묵한 친구의 죽음과도 같은 기분을 느끼며 철렁하고 말았던 건 그때문인거지.

오늘 출근길 두근거리며 지하철역 계단을 다 올라온 후 보았던 남대문은 마치 폭탄이라도 투하된 듯 처참하고 어두운 몰골이었어. 그 어두운 참상은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점점 더 커지고 있고 말이야.
밤새 많이도 앓았겠구나, 얼굴이라고 쓰다듬어 주고만 싶었어.

오늘 하루종일 경찰차와, 소방차와, 취재차가 둥그렇게 숭례문을 주위를 빙 둘러 에워싸고, 흰 천막을 둘러 세웠고,
서울 도심 한복판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헬기가 두두두두 소리를 내며 선회했었다.
TV에선 YTN뉴스가 여전히 불타 까매져버린 남대문을 배경으로 실시간 뉴스를 타전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남대문이 내려다보이는 사무실에서 평상과 다름없이
회의에 참석하고 전화를 받고 시간에 쫓겨 빙글빙글 돌아가는 업무에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고 만다.

2008.02.11

마이러브

참을 수 없이 귀엽고 도도하고 매력적이고 좋은 냄새가 나며 뽀송거리는데다,
보들보들 보드랍고 따끈따끈하고 말랑거리고 어딘가는(발바닥) 쫄깃쫄깃 푹신거리는 존재.
나를 보지 않는 듯 하면서도 언제나 나의 주위를 맴돌고 아프도록 깨물어릴때도 있고 결국에는 끊임없이 나의 사랑을 탐내.
햇살 속에 늘어져 있는 것을 좋아하고 작은 소리에도 귀를 쫑긋거리며 큰 눈을 더욱더욱 크게 만들곤 하지,
햇살 아른거리는 창가에서의 그 눈은 그 어떤 사파이어 보석보다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일순간 매혹당하지 않는다면 그사람이 이상한 사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문득 돌아보면 너는 거기 있기때문에 아마도 사람보다 더 너를 좋아하나봐.

겨울

오늘 올해 들어 제일 살벌하게 춥더니만,
밖이 쿵쿵거려 창문을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어둠속에 이웃집 지붕이 눈에 소복이 덮여 있다.

부시럭 부시럭 눈은 하염없이 내려 밤을 하얗게 새운다.

이것저것 끌쩍대는 랩탑컴퓨터 한구석에 띄워놓은 날씨위젯에는
내일도, 모레도 눈이 내릴거라고 눈아이콘이 두개나 그려져 있다.

지긋지긋하게 싫어하는 겨울로 들어서는 입구인데,
퇴근길에 집어든 김이 피어오르는 오뎅과 가슴을 덮혀주는 뜨끈한 국물에,
역시 오뎅은 추울때 먹어야 진짜 제맛이야라고 생각하고 잠시 행복해졌다.

내가 만약 열대의 섬 해변에 오두막을 지어 살고 싶어하는 오랜 꿈을 이룰수 있다면,
그때는 아마도, 오늘의 칼칼하도록 리얼한 서울의 추위가 그저 흑백사진처럼 뿌옇게 변해버리게 되겠지.
오뎅집 천막 안을 가득 채운 뿌연 김처럼 그렇게 아득한 추억 한자락으로만 남게 되는 거겠지.

겨울이다. 스물여섯의 겨울이 스친다.




결혼에 대하여

 이쯤되면 이 주제에 관하여 쓸 때가 된 거 같지 않은가.

더이상 시니컬했던 중학생도 우울하고 감상적이었던 고등학생도, 

패기있던 대학생도 아닌 이때가 되었으니.

사회인, 더 사실대로 말하면 "생.활.인"이 되었으니 말이다. 

 

언급했던 약 10년동안 나는 몽상가였고, 열정적이었고, 사회 전도적이었다. 

단 한번도 나는 결혼해야지, 어떠어떠한 사람과, 어떠어떠한 장소에서 누구누구와 등등 어쩌구 저쩌구 등등등,

내 결혼에 대해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철들면서부터 독신주의자였다. 

중학교 2학년 바가지 단말머리를 하고 있는 꾀죄죄한 소녀였던 시절부터 그랬었다. 

아, 수정해야겠다. 한때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이 사람과 헤어지면 평생을 불행하게 살 것만 같은 사람, 

결정적으로 70년을 함께 살아도 전혀 지겨워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생긴다면 결혼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절대로 그런 사람은 생길 것 같지가 않다. 그건 자연의 섭리에도 어긋나는 일이 아닐까.

(이기적 유전자라는 논리에 따르자면, 자연의 섭리안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더 나는 배우자, 더 나은 2세를 낳을 수 있는 기회를 찾아다니는 동물적 존재가 아닌가.

어떻게 피를 나누지 않은 사람과의 70년이 지긋지긋해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것도 형제보다 더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70년을.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진심으로. 

좀 덜 친밀한 관계면 가능할 것 같다.

 많은 일을 함께하기는 하지만, 상대의 privacy를 존중해주며, 가끔은 상대의 비밀을 인정하고 캐묻지 않는 그런 관계.

어떤 삶은 공유하고, 어떤 삶은 공유하지 않는 그런 관계. 서로를 신뢰하되,  only me!라는 논리를 내세우지 않는 관계.

 당당히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갈거야, 들어오지마라고 요구할 수 있는 그런관계말이다.

 

우리네 일반적인 사람들은 나이가 차면 결혼을 고려하기 시작하고,

이리 저리 선을 보러 다니고, 만난지 몇개월 만에 60년 70년을 함께할 사람을 정한다.

그것은 그 몇개월동안 앞으로의 70년의 인생을 결정해버리는 것과 같다.

정말로 얼마나 경솔한 일인지... 

내가 보기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보다, 

서른, 마흔을 넘기고서도 결혼하지 않고, 혹은 결혼하지 못하고, 오늘은 이 사람을 사랑하고,  

또 내일은 저 사람을 사랑하는 그런 중년들, 혹은 노인들의 인생이 훨씬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영원히 사랑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리고 영원히 당신을 책임지지 못할 것을 알기에, 

서로를 묶지 않을 수 있는 거 아닌가. 

 

"결혼하지 않는다" 라는 말보다 "결혼하지 못했다"라는 말이 더 불쌍하고, 안타깝게 들릴지 몰라도,

그 말이 정답이다. 어떻게 그렇게들 쉽게 결혼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결혼은 쉽지 않은 것이고, 결혼이라는 궁극의 결론에 많은 사람들이 "안"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못"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게 쉽게 결혼하는 사람들은 이혼도 딱 그만큼 쉬운법이다. 

나는 절대로 이혼이 쉽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고 더 많은 것을 책임질 만한 위치까지 간 사람들은 

 절대로 그렇게 쉽게 처음 정했던 걸 무너뜨려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지금 생각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에 의해서 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을 상처범벅으로 보내게 될 유년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혼 자체가 그렇게 심각하고 무겁고 끔찍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근데도 불구하고 이혼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무섭고, 호러블한 일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딱 그것이 나이어린 친구들이 부모들이 이혼할 때 겪는 감정들이기 때문이다. 어린 영혼들은 이상하게도 그런 일들에 상처를 받는다. 세계를 지탱하고 있던 큰 기둥이라고 할까, 은신처라고 할까, 보호막이라고 할까, 그것이 그냥 쫙 찢겨져 버리거나, 산산조각나는 그런 느낌을 받는 거다. 그들이 그만큼 상처를 받지 않는다면야 나는 이혼을 반대할 어떤 이유도 없다고까지 생각한다.)

 

아이들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그렇게 결혼에 대해 심각해져야 할 필요는 없다. 

한때 죽도록 사랑했기때문에 밤낮 같이 있고 싶어졌기 때문에 결혼을 결심하고, 

그리고 몇년 후 그 감정들이 눈녹아 사라지듯 다 흔적도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이혼을 결심해도 도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쉽게 결혼하는 문제는 어딘가 찜찜하다. 

 그 사람을 영원히 사랑할 자신이 없다면, 내가 내 결심에 관한 믿음이 도저히 생기지 않는다면,

그럼에도 "지금은" 그 사람이 마냥 좋다면 그냥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살면 되는 것 아닌겠는가. 

결혼이란 "영원"이라고 불리는, 신성함 그 자체인 개념에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나에게, 그대에게, 세상에게. 영원히 사랑하겠노라고 맹세하는 것이다. 

그 맹세를 쉽게 하고 쉽게 깨는 것은,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그대에 대한 예의도 아니며, 세상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결코 쉬운 개념일 수가 없는 것이다. 

 

 암튼 이 얘긴 이정도로 하고.

결혼의 형식에 대한 생각도 나름대로 있다. 

 

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에서 유일하게 동감했던 에피소드 하나는  미란다의 결혼식이었다.

자세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이 사람 저사람 모아놓고, 바보같은 서약이나 읊고 있는 남들이 다하는 결혼식이 무의미하고 

바보같아 보인다는 이유로 미란다는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냥 시청에서 문서작성하고 시청직원의 몇마디 말로 끝내려하다가,

나중에 마음을 바꿔 친한 친구와 가족 몇만 시청 잔디밭 앞에 둥그렇게 세워놓고는,

맹세를 하는 간단한 절차만 거친다. 그리고 가까운 식당에서 함께 식사.

왜 맘을 바꿨냐는 친구의 물음에, "사람들 앞에서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크게 말하고 싶었어"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일이 중요하긴 하다.

그래서 요란한 복장과 의식복을 갖춰 입고, 평소엔 하지 않는 화장을 하고, 어색한 미소를 짓고..

등골이 휠만큼의 격식에 맞는 선물을 준비하고, 그러느라 기가 찰 정도의 돈을 쓰고,

그 돈을 메우기 위해(아니, 경조사에 주위사람들과 서로 돕자는 상부상조의 정신으로겠지)

나의 결혼식을 축하해주러 오는 사람들로부터 돈봉투를 받아 챙기고...

이런 일들이 정말로 비합리적이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건 나 혼자만 그런 것인지..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런 우스꽝스러운 격식을 갖출 정도로 중요한 것인가.

 

사실 나는 사람들의 축하는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내가 워낙에 천상천하유아독존 스타일이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냥 가족과 가까운 친구 몇 앞에서 "가 영원히 사랑할 사람이 이사람이야"고 한마디만 해줄 수 있으면 그냥 그 정도가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게 훨씬 행복한 일이 될 거 같다.

+++ 음악에  관한 영화는 항상 보고 나면 뭔가 풍부해지는 느낌이다. 카핑 베토벤을 봤다.

회사에 가는 것은 나를 소모시키고 닳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음악에 관한 영화를 본 후에는 내 안에 뭔가가 차오느는 것 같다. 열대섬에서 바다를 마주하고 누워있는 것도, 낯선 거리를 걸으며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며 여행하는 것도, 이렇게 앉아서 몇마디 글을 쓰는 것도 나를 차오르게 하는 것 같다. 나는 나를 채우는 것들을 더 찾아야 된다. 그리고 평생동안 채우는 일만 하고도 살 수 있을만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 가끔은 초에 불을 붙이고, 마차를 타고, 펜촉에 잉크를 묻혀가며 메모를 하며 사는 삶을 상상해본다. 

음악을 듣기 위해 MP3를 꺼내거나 컴퓨터를 켜서 웹페이지를 들락거리는 대신에,

날짜를 꼽아 좋아하는 작곡가의 리사이틀에 가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떡진 머리를 감추려 야구모자를 눌러쓰며 요 앞 슈퍼에 가는 대신

1-2시간을 걸어서 먹을거리를 사러 장에 가는 삶.

어느 나라이든지 가난과 불편함 고단함같은 것들이 인생을 짓누를 수도 있을 텐데.

평생은 말고 가끔은 완전히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죽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엄마가 두번 다시 놀이공원따위 가지 말라고 했다.
거의 십년만에 갔던 놀이공원에서는 우리가 방문한지 2-3일 후에,
우리가 탔던 바로 그 기구에서 일가족이 모두 떨어져 사망했다.

매일같이 출퇴근 길에 지나치는 청량리역에서는 내가 도착하기 약 4시간 전에
공사장 크레인이 넘어져 2명이 죽었다.
4시간 후에 도착한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매일과 다름없이
청량리역에서 내려서 다음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세상이 원래가 그런거였는데 이제야 깨닫게 되는 건지는 몰라도.
죽음의 위험, 비명횡사의 가능성은 정말로 이곳 저곳에 널려있고,
우리 모두는 하루 하루를 "살아 남은" 존재들의 집단인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같이 억세게 운좋은 놈들이구나.

2007 독서편력


그 남자네 집 박완서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1,2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무소유 법정
2030 경제학 스트레칭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대지 펄벅
잘 찍은 사진 한장

-ing
The Alchemist

최근, 정리되지 않은 편력

아이즈와이드셧 스탠리큐브릭
수면의 과학
행복을 찾아서
The Fountain 대런 아로노프스키

- 리얼캔쿤
한때 팬이었던 리얼리티쇼 프로그램을 그대로 옮겨 영화로 만들었다.
여느 리얼리티쇼가 다 그렇겠지만 연출과 의도가 다분히 심심찮게 보인다.
막가파 놀자식의 영화이긴 하지만 앨런의 드라마틱의 성격변화,
20대 초반의 풋풋한 젊은 남녀의 꿈과 가치관(가뭄의 콩나듯이긴 해도),
보는 사람마저도 즐겁게 만드는 캔쿤의 에너지넘치는 휴양문화, 파티문화등등은
볼만했다.
그리고 오마이갓, 스눕독의 비우티풀.
호주 체류기가동안 어딜 가나 나왔던 나의 20대 초반의 배경음악이
그들의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거의 울뻔.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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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오브 헤븐
귀향 페드로 알모도바르
그녀에게 페드로 알모도바르
시간을 달리는 소녀

창가의 고양이

황진이 포즈를 하고 창가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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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냉아 불렀더니 뒤돌아 봐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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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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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모레스페로스->24그램->바벨로 이어어지는 그의 연작(연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들에는 주제를 향해 가는 방법에 있어서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각각 동떨어져 있는 듯한 몇가지의, 누군가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 각각의 이야기들이 살얼음판을 겪는듯한 위기에 다다르게 되면,
마치 교차로에서 길들이 만나듯이 교묘하게 만나서 얼키고 설키는 단계가 된다.
그리고 그때에 각각의 이야기들이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는 동시에 일관성 있는 하나의 목소리로 합쳐지고, 그 주제는 몇배, 몇십배 메아리치듯이 큰 파장을 만들며 관객의 머리속, 아니 가슴 속에 각인되게 된다.

- 그의 영화에는 그냥 여기에 존재하는 삶이 덩어리지고 응축되고 굳어져 그냥 스크린에 그대로 복사된 것만 같은 리얼리티가 있다.
환상이 아닌 실제를 보여주며 거기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삶의 무게감은 "그래, 그냥 저게 삶인거지.."라고 중얼거릴 수 밖에 없게 되어버린다.

- 바벨이라는 제목의 의미심장함은 막이 올라갈 때, 역시나 의미심장하게만 들려오는 엔딩곡을 들으며 앉아 영화를 곱씹을 때 확연해진다. 절대 어렵거나 은유적이지 않으면서 흥미로우며,동시에 사려깊은 그의 연출은 장면, 장면마다 빛이 날 정도로 눈부시다.
말하자면 24그램에서 주인공의 건강상태에 따라 하늘로 날아오르기도하고 지상으로 내려앉기도 했던 황혼 속의 새떼 장면 같은 것들 말이다.

인류가 완벽한 바벨을 갖는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그리고 그건 비단 민족 혹은 인종간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다른 타자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의 문제다.

-남미의 촉망받는 신예에서 할리우드 주류로의 성공적인 진입에 축하를.
 (상업적 면에서) 갈수록 세련되어져가는 그의 영화를 볼수있는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진다는 얘기가 된다. 진정 축복이다.

- 갈씨아! 싸랑!

2003년도일까.

평생을 잊지 못할 밤.(아니, 잊어서는 안될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무언가를, 간절하게 갈망하는 그 신성한 마음짐으로 달을 올려다 보던 그 때.
여름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짙푸른 쪽빛 공기속에 은은하게 핀 벚꽃가지를 보았다고 생각되는 건 기억의 왜곡일까.
하늘은 높푸르고, 얼음조각처럼 차가운 별빛 하나도 보았다.
달은 온 하늘을 밝힐것처럼 열정적이었지만
보드라운 실크천조각 같은 구름을 흰망사처럼 보이게 만들 만큼만 밝았다.
아홉시가 넘어서야 동아대 중앙도서관을 향하는 길에 벤치에 홀로 앉아서
고독하다고 느끼고, 손을 꼭 마주 잡고 "부디..."라고 속으로만 읊으며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았다.

그때처럼만 간절하게, 그때처럼만 치열하게, 그때처럼만 순수하게, 그때처럼만 열정적으로.

[스크랩]"진짜 어마어마 하네"

▲ 한 빙산이 호주 남극 영토 근해에 떠있는 모습. 이 사진은 호주 남극국이 제공. 해수면의 상승과 극지 대빙원의 해빙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몇몇 지역에게 이미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을 빚어내고 있다고 최근의 위성 자료들을 분석한 지도적 세계 과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로이터 뉴시스
http://photo.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3/23/20070323006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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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그림책 블로그

모두 http://blog.daum.net/isis177   에서 가져왔다.
이 블로그 진짜 멋짐. 마치 신기하고 예쁜 두꺼운 그림책을 한장한장 쉭 넘겨보는 느낌. 눈요기거리 너무 좋다.
글들도 재미나고.
맘에 드는 그림들만 모아놓고 보고 싶어 복사해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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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기괴하고

예민하고

수려하고

역겨우면서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고

너무도 아름다운 영화.


향기로 세상을 지배한다는 모티브 부터가 매력적이다.

궁극의 미(美, 세상을 지배하는 beauty)를 위한 살인들, 그 자체가 예술로 보여지기까지 함.

뷰티는 보통은 시각에 의한 것이었으나 후각적 뷰티는 더 큰 파워를 발휘할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영화가 힘을 발할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가 영화는 절대 제공할 수 없는 냄새에 관한 영화기 때문이다.

(소설도 마찬가지)

영화가 종합예술이라지만 감각의 면에서 본다면 시각적인 요소가 다분히 많고 청각(음악)은 보너스인 수준인데,

그런 미디어가 냄새를 추앙하고 기리고 있으니 감상자들은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그리고 각각의 관람자들이 상상해낸 그 궁극의 향기 속에서 각자 스스로를 취하게 만드는 거다.



첫번째 희생자, 노란 과일을 파는 그 아가씨는 눈 생김새가 너무도 예쁘다.

한없이 받아줄 것만 같아 기대고 싶게 만드는 눈빛이랄까.

13번째 요소(fatal 요소)의 역할을 했던 맨마지막 희생자도 물론 아름다움.
(피터팬에 나온 그 웬디래!!! 많이 컸다. 웬디.)
그녀의 아버지는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어디서 봤드라...
(해리포터, 러브 액츄얼리에 나왔었대!!!)

음악과 효과음과 시각적 효과, 각 소품들을 포함하는 미쟝센은 훌륭하기 그지없고..

OST를 사고 싶다.


장 밥티스트 그르누이는 자기 세계에 빠진 깡말라깽이 자폐증 환자 같음. 긴 목과 뾰족한 얼굴은 캐릭터에 잘 어울린다. 대사는 거의 없음.

어느 전위예술가들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광장에서의 집단성교 장면. 와우, 어떻게 찍었을까.

(네이버에 쓴 글들은 복사해서 붙여넣으면 왜 줄마다 쓸데없는 P태그가 추가되는 것인지..)

근황.

4개의 교육청을 끝냈다. 36시간을 이상을 잠자지 않고 깨어있는 기염을 토했다.
어느 날밤에 우리는 장비들로 수북한 미니 봉고차에서 내려서 아무말 없이 찬공기를 맞고,
어떤 이는 담배를 태우고, 나는 캔커피를 홀짝이며 아무도 없는 거리를 서성이다,
거사를 치르기 위해 기계소리 윙윙대는 국사에 발을 디디곤 했다.
졸립지 않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긴장감으로 삐쭉 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
망을 고립시켜놓고 하는 작업이 이럴진대, 트래픽을 온전히 살려놓고 하는 IP망 작업은 절대 못할성 싶다.
늦은 밤 업무의 고단함과 패킷하나 떨어뜨릴까 안절부절하는 그 중압적인 스트레스를 어떻게들 견뎌내시는지.

낮에는 지리하고도 너무도 tricky한 configutration 제작과정으로 미치도록 바빴다. 숨쉴 여유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밥먹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웠다. 여전히 시간이 모자랄까봐 노심초사,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성동교육청, 동부교육청, 빡빡한 스케줄은 끝도없이 나를 따라다닐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이상하게도 너무도 바빠서 미칠 것만 같은 요즘에, 마치 영화에서나 보는 flashback처럼
그때의 장면장면이 너무도 자주 머릿속을 스쳤다.
일상이 건조하다고 느끼면 느낄 수록 과거로 자꾸만 회귀하는 것 같다.
길다란 외대앞역의 지하철 선로와 그 양가로 쭉 늘어선 3-4층짜리 똑같은 건물들과, 덩달아 길쭉길쭉하게만 보이는 회색빛 하늘이 지겹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
태양이 머리위에 있어 지나치게 밝고 뜨거운 브리즈번 교외의 등교길이. 개미에게 물려가며 버스를 기다리던  fisher house 바로 앞의 버스정류장. 반짝이는 강물. 머리에 쓰면 마치 mushroom같다고 놀림을 받던 내 빨간 자전거 헬멧. 기린이 뜯어먹고 놀것만 같은 키큰 아카시아 나무들. 그곳의 냄새, 그곳의 습기, 그곳에서 숨쉬던 지금과는 다른 나의 열기. 그 모든 것들이 장면장면 뚜렷하고도 생생하게 바로 눈앞에 있듯이 문득 떠오르는 거다. 그러고나면 가슴이 잠시 뜨끈해졌다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수그러들곤 했다.
엄마는 돈을 벌어서 집을 사라지만, 나는 다시 길위에 서고 싶다.

오래간만의 꿈에.

처음으로 강냉이가 꿈에 나왔다. 그리고 IK.

강냉이를 회사에 데려갔다. 책상밑에 놔두어도 내가 옆에만 있으면 그닥 울지 않는 고양이다.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일이 있어 잠시 어딘가 다녀왔다. 강냉이가 없다.
분명 끼웅끼웅 소리높여 울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어디서 길고양이 들어왔다고 내쫓았을 것이다.
밖으로 나가 찾아다녔다. 어둠이 깔려서 길은 검은색이고, 실제 회사 주변과는 달리 전혀 번화하지 않은 동네다.
그 검은 색 길을 걷다 먼 발치에 붉은 조명을 뿜는 입구가 보인다. 마치 외국의 유명 관광지마다 있는
"Believe or Not"과 같은 인상이다. 입구로 들어서니 고풍스런 조각들과 붉은 카펫, 붉은 벽으로 치장되어 있다.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밖에서 강냉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흰 상의와 검은 바지(마치 웨이터와 같은)로 된 유니폼을 입은 여종업원 두명이
나와 함께 따라 나선다. 전문적으로 사람들의 점괘를 봐주는 직업인에 가까운 인상이다.
입구 언저리에 강냉이가 있다.
그 중 한명이 강냉이를 보고 별과 바꾸자고 한다.
실제로는 내 팔목 안쪽에 별을 새겨주겠다는 의미였으나 분명 그렇게 말했고, 꿈속에서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별과 바꾸자"
그리고 나는 별 망설임없이 거절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생각해 본 일이 있다. 어떤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으면 깊을 수록 그 사람의 부재상황에 대한 상상이 더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거다. 걱정과 불안, 혹은 서글픔등의 감정을 마치 실제인 것처럼 느끼고, 그러고 나면 언젠가는 겪어야 할 그 일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뭐든 "닥치고 보는" 평소 내 성격과는 좀 다른 태도이지만.
어제는 강냉이의 죽음을 상상했다. 몰캉몰캉 부드럽고 뜨거운 배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날이면? 자면서도 꼬리를 움찔거리는데, 어느날 집에 와보니 꼬리조차 움직거리지 않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평소에는 물을 열기도 전에 문 바로 앞에 와서 버티고 야옹거리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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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나도 지금보다 더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고, 감정적으로 좀 더 안정적으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는 더 길게는 생각하지 않았다.

(IK얘기는 다음에..)

캐리비안의 해적 그리고 "게드전기-어스시의 전설"


- 빰빰빠바밤빰빠바빰빰빠바밤!
1편에서 죽었던 그 선장이 나오면서 3편을 예고하며 크레딧이 올라가고 동시에 터지는 음악. 그 순간에 머리속에는 "우이씨, 3편까지 어케 기다려"를 뇌이고 있더라.

- 우리 대리님 말대로 유치찬란하긴 했다. 근 몇년간 뎁의 영화들은 모두 그의 아이들을 위한 것만 같다. (당신 아이들 클때까지 어찌 기다린다우.)
상어머리, 문어머리, 소라머리는 진짜 만화같다.

- 잭과 그의 일당들이 배를 저어 늪을 거슬러 올라서 도착한 그 점술사의 집 장면에서 가슴이 철렁!했다. 이건 완전 몇년 전 몇일 밤낮을 지새우며 플레이했던 "원숭이섬" 시리즈의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거다.
게다가 점성술사의 집 내부 모습이라든지 점성술사 자신의 모습이라든지 모두 딱 그 이미지 그대로다. 영화쪽 캐릭터가 좀 더 매력적인 아가씨라는 것만 제외하고는.
그리고 식인종파트도 너무 심하게 비슷하다. 캐리비안이라는 동네는 원래가 그런 모습들이 서구인들 머리속에 박혀있는 정형화된 이미지인 건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 암튼 백분 넘게 매력적인 캐릭터(개인적으론 잭스패로 1위, 점성술사 2위, 애꾸눈과 땅달보 커플 3위)들과 뛰어다니고 날라다니고 구르고 박살내다보니 유쾌, 상쾌, 통쾌하기 그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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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시의 전설"이라는 부타이틀에서 설마설마했는데
진짜로 르 귄의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란다.
지브리스튜디오지만 하야오가 감독이 아니다. 미야자키씨인걸 보아하니 그의 자손인가?

아름답지만 비극적이고 지나칠 정도로 진지한 르귄의 작품을 과연 어떻게 지브리 특유의
"사랑스러운" 만화로 만들어 낼까??? 궁금함이 무럭무럭 일어나는 한편으로,
나의 얼마 안되는 "페이보릿" 목록에 올라있는 원작을 요상스럽게 바꿔놓지는 않을까하는 걱정도 든다.
소설이란 게 작가가 엮어내는 몫만큼 독자가 개인적으로 구성하는 영역도 무한히 넓어서
같은 작품도 모두들에게 다 다른 작품이 되어버리는 특성이 있기도 하지만,
그래서 '요상스럽다'라는 판단도 다 나의 편협한 시각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서도,
2002년판 스티븐소더버그의 솔라리스와 같은 경우를 보면 최소한 예의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라는 생각도 크게 든다.

암튼 암튼 기대만빵으로 부풀게 하는 영화들이 종종 나와주니 일상의 작은 행복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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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이씨.....
피같은 여름 휴가를 왜 빈둥빈둥 노는 날들로 채우려고 작정을 하고 있었던 걸까??
이리저리 떠돌고자 하는 것은 게으르고 겁많은 이런 나에게도 평생의 로망인데..
여름 휴가가는 다시 없을 기회인데 말야.
돈 많이 모아서 내년에는 꼭 열대아시아로 떠날테다.

파워퍼프캣 강냥이

####우리가 처음 만날 날.

2006년 6월 27일이었나, 28일이었나?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퇴근길, 뒷목이 뻐근해지고 저녁 어스름과 함께 뭔지 모르게 일상을 벗어나고픈 욕망이 스밋스밋 넘실거릴 때. 그때 만났다.

우리 사무실 옆 빌딩은 며칠 전 부터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건물은 부직포와 같은 천으로 감싸지고 낙석주의라고 크게 써붙여 놓았다. 제일은행이 있던 건물이었다. (그가 그래서 제일은행둥이다.)
그 바로 옆에서 목청 돋구며 에웅에웅 거리고 있었다. 내가 손을 내밀었으나 머뭇거리며 다가오다가 다시 멈추곤 한다. 우리 사무실 빌딩의 주차관리소 경비아저씨는 나보고 데려가라고 했다. 오늘 하루종일 저러고 있어. 도망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람에게 다가오지도 않아. 제일은행이 이사가면서 어미가 버리고 간 새끼가 몇마리 나왔는데 이제 쟤만 남았어.
그러면서 내가 데려가려고 맘을 먹고 번쩍 들어올리자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하나 준다. 이거 가져가서 먹이라고. 새끼고양이에게 우유를 주지 말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내가 먹을 요량으로 감사합니다고 하고 받았다.(크흐흐)

한손바닥에 무리 없이 올려놓을 수 있는 크기였다. 병원에서는 이가 제대로 나지 않았으며 한달이 채 될까말까 해보인다고 했다. 집에 데려왔으나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미친듯이 울기만 하였다. 그리고 덜덜덜덜 쉴새없이 떨었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건지 안하는건지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배를 땅에 붙이고 기어다녔다.
작은 움직임, 소리 하나하나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예민하게 굴었다. 낙석이 떨어지는 공사장 한가운데 사흘동안이나 있으면서 많이 놀랬나. 이불 속 같은 곳으로 파묻혀 들어가서 숨고 싶어만 싶어 했다.
젖병을 들고 끊임없이 뭔가 먹여보려 했지만 진을 다 빼고도 한방울도 먹이지 못했다. 말도 안듣고 시키는대로 하지도 않고하여 얄밉기만 하였고, 그래 맘대로 하라지 하는 심정이 되어버렸다. 이틀을 출근땜에 혼자 놔두었는데 집에 가는 길에 그러다 정말 죽어버리는게 아닐까?생각이 드는거다. 이틀을 굶은데다 집에 사람이 없을 때는 정말 하루종일 쉬지 않고 울어제끼는 모양인지 집에 가보면 목이 다 쉬어있곤 하였다. 그 쉰 목 그대로 또 울고 또 울고 하였다.

사흘째 퇴근하여서는 "정말 미안해미안해" 하는 심정되어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사료를 물에 불려서 입앞에 대주니 조금씩 먹기 시작하였다. 떨지 않게 되었고, 계속해서 울지도 않았다. 화장실이 어딘지 몰라 못찾아가곤 했으나 눈치를 보고 쌀때다 싶을 때쯤 모래에 넣어주었다. 그땐 정말 제 똥도 모래로 제대로 덮을 줄을 몰랐다. 엉뚱한 곳 모래만 몇번 앞발로 쓸다가 기어나오는 걸 보니 고양이 맞나 싶었다. 제 똥꼬 그루밍 할 줄도 몰라서 응냄새를 풍기기도 했다. 똥꼬에 분무기로 물을 쏴주면 고개를 배에 파묻고 그루밍을 시작하려 시도를 하지만, 머리가 너무 큰(!)나머지 중심을 못잡고 쓰러지는 바람에 번번히 실패했다.
으이구, 한심스러워. 밉상이야 밉상!하였다. 동물을 무턱대고, 앞뒤안가리고 좋아했던 나도 낯선 동물을 집안에 데려온 상황에서는 좀 달라진 것 같았다. 예전과 달리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아님 상대가 너무나도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어서 그런지 그냥 막 너무나 사랑스럽지는 않았다. 그냥 한 발짝 멀리 떨어져 지켜보고 있게 되는거다.


어느 시점부터 그가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을까?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고개를 돌린다든지 하는 반응조차 없던 고양이가 졸린 눈을 하고 내 배위에 올라서 척 늘어져 잠을 청하던 그 때부턴지, 머리맡을 기웃거리며 말랑말랑한 손으로 내 뺨을 툭툭치던 그때부턴지. 그냥 어느 순간부턴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처음 온날 무자비하게 세척을 당했던 그 현장인 욕실, 그렇게 무서워하던 그 욕실에 똥누러 들어갈 때조차 소리없이 펄쩍펄쩍대며 따라와 굳이 똥냄새를 맡으며 발 밑에 앉아 있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제멋대로 불러도 대답없는 고양이지만 어느 순간 옆에 와서 제 엉덩이와 등을 내 발, 내 등짝, 내 머리통 등등에 기대어 놓고 휴식을 취한다.
자연스럽게 나와 그는 동거인이 되었고, 내 바램을 담은 이름처럼 그는 강한 고양이(강냥이)로 거듭나기 위해 매일 밤 무예수련에 열심히다.

설겆이 하느라 싱크 앞에 선 내 발 사이를 얼쩡거리며 제 털로 간지럽힐 때 그때 제일 사랑스럽다.
또 마치 알을 품는 새처럼 앞발을 접어 가슴팍에 집어넣고, 고개는 꼿꼿이 든 채로 앉아 있을 때 깜찍해서 쓰러질 거 같다. 또또 내 코에 제 촉촉한 코를 살짝 대면서 코를 물어뜯을 때(ㅡ_ㅡ;)도 좋다. 또또또... 암튼.

니가 세상을 살아온 날 중 절반이 나를 만나기 전이었고, 또 반을 나와 같이 보냈는데 어때, 좀 더 행복하니?

####전 여자도 남자도 아닌 몸입니다.

배에 선명한 여섯개의 젖꼭지, 똥꼬와 가깝게 맞닿은 오줌누는 그곳. 나는 틀림없이 암컷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집에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이 혼자 사는 몸이라 강냥이에게 이런저런 말을 나도 모르게(!)하게 되는데, "언니 좀 물어뜯지 마!!!"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곤 했다. 한치의 의심도 없이 여자인 줄로만 알았다.

근데 데리고 온 지 3주정도 되는 날부터 오줌누는 그곳이 점점 올라오더니 이제는 선명하게 남성의 그곳이 되어버린 거다! 강냥이는 남자고양이었다. 근데도 지금도 나는 이 기지배야, 기지배야 하고 부른다.;;;;; 고양이처럼 기지배라는 호칭이 잘 어울리는 동물이 또 있을까.


####니가 주몽이냐? 무예수련 좀 그만 할 수 없겠어???

보이지 않는 적을 매섭게 노려보며 비장하게 덤비는 그 모습은 정말 말로만 듣던 그 상상훈련의 진면목이 아닐 수가 없다. 내게는 절대 보이지 않는데 적의 공격 루트를 치밀하게 상상하는 건지, 이리저리 샥샥 피하면서 적당한 기회를 노려 그 적에게 공격을 가한다.
또는 핸드폰 목줄을 막 흔들면서 이것봐라 이것봐라 하고 놀릴때는 무서운 집중력으로 꼼짝않고 그 줄을 응시하고 있다가 내가 손을 멈추는 그 순간, 타이밍을 놓칠새라 재빠르게 앞발을 들고 펄쩍 날아올라 줄을 덮치기도 한다. 털을 세우고 몸을 들어올려 사이드스텝을 밟을 때는 꺅! 멋있어 소리가 절로 나온다. 고양이가 멋진 동물인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사냥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으른 듯 하면서도 의외로 남이 모르는 때에 정신을 예리하게 갈아 놓는 것만 같다.

다만 다 좋긴 한데, 의자위에 올라갔다가 우당탕탕거리며 식탁에 올라가기도 하고 발톱을 세운채로 누워있는 내 다리위를 평행봉 걷듯이 휙 지나가버리고 하는 것 좀 자제해줬으면 좋겠다;;;; 얼마나 아픈지 알아???!!!!
퇴근하여서도 밥짓느라 저한테 관심없는 듯이 굴라치면 그 발톱으로 서있는 나를 기어올라와서 어깨 꼭대기까지 도착해 올라앉아 있는다! 그러고는 내가 손으로 뭘 하고 있는지 나와 같은 시야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거다. 거기까진 좋은데 강냥이가 어깨위에서 균형잡느라, 발톱을 세우고 앉아 있어서 목 언저리에 상처난단 말이다. (누가 보면 야한 생각할라.)

게다가 요즘은 이빨이 근질근질한지 내 손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내가 "아야!"하고 소리치면 좀 강강도를 조절하며 살살 깨물다 곧 다시 세게 깨물고를 반복한다. "이새키 이거"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너도 당해봐하는 생각에 제 앞발을 깨물었더니 우엥우엥거리면서 저는 내 손을 깨무는 걸 멈추지를 않는다.

잠자다가 이놈이 깨무는 통에 깨기도하고 암튼 무는 버릇땜에 고통스럽다. 더운데도 손발을 이불속에 넣어놓고 자야만 한다.ㅠㅠ

부산에서, 마지막 잔상

마치 따분하기 짝이 없는, 지평선만 바라다보이는 외진 동네에 사는 어린 시골처녀들마냥
언제나 떠나고만 싶어했었다.
십수년을 매일 똑같은 등하교길을 오가고 매일 똑같은 하늘 아래를 걷는 것이 인생을 낭비하고만 있는 것만 같았다. 날아 날아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있어보지 못한 어떤 곳들을 떠돌고만 싶어했었다. 그땐 그랬었는데.

졸업식을 전후해서 방문한 고향에 어스름이 깔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의 유년시절의 배경은 지평선 끝의 외진동네와 다름없이 외로운 아파트 숲이었다. 중학교 3학년, 선미와 다투고 화해했던 날 밤에 집으로 오던 길에는 저 건물들 사이의 하늘에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보름달이 떠있었는데. 그 하늘이 이번에는,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한 스물다섯살의 성인에게 가슴먹먹해지도록 습기찬 푸른빛을 보여주었다.

계정이사 및 태터툴즈 업그레이드

호스팅을 namoweb.net으로 옮기면서 태터툴즈 업그레이드도 하겠다고 맘먹고 있다가
이번 주말, 토요일에 출근했다가 오후에 집에와서 한 4시정도에서 부터 시작을 했다.
한 두시간이면 끝나겠지 하고 있었는데,
백업받고 자료 이전하기가 만만치 않은거다. 그렇게 삽질을 했던 이유가 지금 생각해보면, 이전에 쓰던 무료계정에서 일정 용량 이상 다운로드도 막아놓은게 아닌가 한다. 혹은 트래픽 제한에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백업파일이 한 30메가가 되는데 계속해서 4메가정도에서 끊겨버리는거다....ㅠㅠ
계속 씨름하다가 날밤을 샜다. 세상에 시간이 아침 6시가 되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늘이 새하얗게 밝아왔다.. 엄마가 있었다면 또 혀를 끌끌차며 한 잔소리했을거다..
어쨌든 여차저차해서 이사도 성공 하고,
앞에 떡하니 오아시스 사진도 올려놓고^^ 흐믓~
배경음악도 깔아놓고 싶은데 아무래도 저작권법이 좀 무섭다. 이건 좀 보류하기로.

대학 입학하면서부터였으니까 한 5년전부터 노트가 아닌 웹에다 기록을 하기 시작했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편리해서"였다. 연필을 쥐고 글자들을 써내려가는 것보다 타이핑을 하는 것이 에너지 소모가 덜하고 또 머리속에 파바박 떠오르는 생각을 떠오르는 속도대로 쓰는 것에는 연필보다 타이핑이 낫다.
글자로 써내려가다가 앞에 떠올랐던 내용이 생각이 안나서 답답했던 경우가 많았다. (메멘토적 기억능력)
타이핑 문제뿐만아니라, 정리하기도 수월하고 사진등을 구해다 붙여놓기도 편하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도 편리하고, 여차저차한 편리함때문이었는데...

문제는 이것들이 잃어버리기가 쉽다는 것이다. 내 손안에 들어있는 일기장처럼 영구적보존이라는 문제에 봉착하면서 참 고민을 했었더랬다. 싹 긁어다가 어딘가로 싹 옮겨놓고 싶기도 했고, 내 모든 기록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싶기도 했다. 그런면에서 블로그라는 툴이, 특히나 놀라운 백업기능을 선보인 태터툴즈가 고맙지 않을 수 없다.

암튼 5년간의 기록들이 무섭도록 많이 없어졌는데
태터를 쓴 이후의 기록은 그나마 갖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싸이월드나 다음카페나 네이버 블로그는 쓰지 말아야 한다. 그것들을 한곳에 모으기가 불가능한데다 더욱이 위험한 것은 거기에 쓰인 내 글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거다.(저작권 문제)
네이버는 놀라운 사용자수와 그들이 생성해내는 수많은 자료에 대한 편리한 스크랩 기능때문에 멈추지 않을 것 같지만. 스크랩으로는 계속 쓰게 될 듯.

암튼 행여 말도 없이 내 DB자료 싹 날려놓고 나몰라라 할 것같았던 불안불안한 무료계정 사용에 종지부를 찍었으므로 착실하게 기록을 해나가야겠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무섭도록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일상에서 "자아개념"이라는 맛을 보려면 "성찰"의 방법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고 있고, 그 성찰에는 예전부터 그래왔듯이 "기록"만큼 좋은 것이 없는 듯 하다.

현대판 노예 할아버지 "이흥규"씨 (뒤늦은 SOS를 시청하고)

사람이 어떻게...
양심도 없느냐..

라는 당연한 말이 어떤 경우에서는, 몇몇 경우의 상황에서 통용되지 않을 수 있다.

발길질을 해대는 주인이라는 사람, 그리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자신의 행동에 털끝만큼의 잘못도 느끼지 못하는 그 사람의 부인, "그걸 알아서 뭐하시려구요"라고 일관, 방관하는 동네 사람들, 나라의 녹을 받아먹으면서 부여받은 자신의 역할조차 망각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라는 사람.

이건 "그 사람들, 아주 나쁜 사람들이야" 라고 얘기할 만한 문제가 아니다.
윤리의식까지 갈 것도 없고, 누구나가 갖고 있는 "인권"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 몰이해의 문제이다.
선과 악의 문제, 혹은 감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 혹은 몰이해, 이성의 문제인 것이다.
"인권"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 자체를 아주 모르고 있는 무지한 사람들이라는 거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하니까, 예전에는 다들 그래왔으니까, 다른 동네 사람들 모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는 문제니까 나도 내버려 두지뭐...' 하는 생각으로 50년을 지나쳐 왔을 것이다.

그리고, 당사자인 할아버지는...
바보같이 순박하기만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그랬을 지 모른다. 50년 전에는 돈이 없어 오갈데 없는 청년이 잘 사는 사람에게 얹혀 살면서 부림을 당하고 거처를 제공받는 등의 일이 팽배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고방식대로라면 일년, 이년이 지나면서 자신에게 행해지는 대우가 부당함을 깨달았어야 하고,
그걸 개선시키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했어야 하고, 관철되지 않았을 때 반항정도는 했어야 한다.
내가 제공하는 노동력에 비해 제공받는 재화는 터무니없이 적다. 당신이 나를 부리긴 하지만 폭력을 행사할 권리는 없다.
시대가 변해서 내가 더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 등등 말이다.
베란다 쓰레기 통 옆에서 앉을 곳 하나없이 쭈그리고 먹는 식사에 기대지 말았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학대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상황에 점점 익숙해 져 갔을 것이고,
상황이 지속되면서 자신에 대한 존엄감을 잃어가고 오랜 학대로 인한 정신적 손상으로 진행됐음이 뻔해보인다.
그리고 주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의 폭력이 그를 옭아맸을 것이다. 가엽게도 그에대한 "공포"가 오히려 그 지옥으로부터 떠나지 못하게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실수 있으세요, 누가 할아버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어요."
- 흐르는 눈물

보는 내내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저 모든 사람들에 대한 답답함, 화만 치밀어 속으로 욕을 퍼부어 대다가,
이 대목에서 갑자기 울어버렸다. 할아버지는 말도 없이 한 줄기 눈물만 흘릴 뿐인데,
나는 진짜로 '슬퍼져' 울었다.
이전까지는 50년의 학대끝에 할아버지는 약간 온전한 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그래서 스스로의 상황에 대한 비관이나 통탄도, 분노, 슬픔조차도 느끼지 못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노인복지전문가의 따뜻한 이 한마디 말에 할아버지가 흘리는 눈물은 그 분이 그저 표현할 수 없는 상황때문에 모든 걸 묻어두고 있었을 뿐, 감정들은 생생히 느껴왔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 사실이 무지하게 슬펐다. 그 분이 그 모든 암담한 감정을 느끼지 못해 왔다면 나는 그냥 화만 나고 말았을 것이다. 느낄 수 있었으나 다만 조용하셨을 뿐이란게 참으로 가슴 아팠다.

"누가 제일 보고 싶으세요?"
"친아주머니가 보고싶어요"

"누님 보고싶지 않으세요?"
"안 봐도 괜찮아요"

50년이 지난 후에 처음으로 발음하는 가족들의 이름. 그의 지난 세월이 온전하게 보상받을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거대한 조직이 다수를 무참히 짓밟는 횡포는 역사속에서 많이 보아왔다. 전쟁, 인종 학살, 나치즘, 식민정책 등등 말이다.
군중의식 속에서 인간존중의 윤리가 얼마나 휴지조각같이 그 빛을 잃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경계대상 1호다.
그런데 그런 거창한 군중의식이 아니더라도 집단적 '무관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나 역시도 '뭐, 저 사람들은 원래 그냥 그러려니'하고 무심히 지나쳤을 그 마을 사람들의 한 명이었을 수 있다. 그 사실이 무서워진다.

정신을 예리하게 닦아 놓을 필요가 있다.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나도 그냥 '지나쳐' 버리는 사람이 절대 되고 싶지 않다.
어쩌면 청소년기 시절 학교 교실에서 목격했던 폭력의 현장과, 그 현장에 있었음에도 목소리를 내어 이 폭력이 부당함을 말하지 못했던
내 자신에 대한 충격이후로 내 정신은 점점 더 무뎌져 가고 있는지 모른다.
(이 일은 어른이 되었음에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아무도 큰 소리를 내어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쉬쉬하는 모양새였다. 가해자가 꽤 영향력있던 존재였을 것이다.
오히려 두둔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 소리없이 암암리에 진행되는 추악도록 못생긴 여론에 치를 떨었었다.
아무 말없이 듣고만 있는 내 자신이 싫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유년기의 관문이 아니었나 한다. 그 일 이후로 나는 세상물을 먹은 걸까, 아님 더 많이 자랐던 걸까. 이때 일에 관해 다음에 기록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더이상 무뎌지지 않도록 다잡고 싶다. 절대 방관자따위는 되지 않을 것이다.

최고령 거북이 175회 생일

무궁화꽃 좋아하는 최고령 거북이 175회 생일

[쿠키뉴스 2005-11-09 05:21]



http://news.naver.com/hotissue/read.php?hotissue_id=279&hotissue_item_id=24489&office_id=143&article_id=0000002018§ion_id=7

[쿠키 지구촌=호주] ○…지상에서 사육되고 있는 현존 동물 중 세계 최고령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거대 갈라파고스 육지거북이'(Giant Galapogas Land Tortoise) 해리엇이 오는 15일 호주 퀸슬랜드주 비어와 소재 '호주동물원'(Australia Zoo)에서 175회 생일을 맞는다.

호주의 유명한 악어사냥꾼 스티브 어윈이 운영하는 호주동물원 웹사이트(www.crocodilehunter.com.au)에 따르면 암컷인 해리엇은 동물학자들에게 거대 거북종의 장수능력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것.

호주동물원측은 또 해리엇이 조금도 늙어 보이지 않고 여전히 자라고 있는 듯이 보인다면서 허브차 등 약용으로 쓰이는 히비스커스(무궁화속 식물) 꽃을 즐겨 먹고 사람들이 긁어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밝히고 있다.

남미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1830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해리엇은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이 1835년경 영국으로 데려갔다가 1842년 호주로 보낸 3마리의 거북이 중 한 마리로 다른 두 마리는 죽고 해리엇만 혼자 남게 됐다.

'악어사냥꾼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호주동물원의 샐리 타운센드 홍보조정관은 해리엇이 매우 건강한 상태며 해마다 동물원에서 11월 15일을 해리엇의 생일로 지내 맛있는 음식으로 잔치를 베풀어 준다고 말했다.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호주온라인뉴스 www.hojuonlin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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